정부의 경제정책이 ‘구조개혁’이란 대명제만 앞세울 뿐 경제현장에 적합한 효율적인 ‘각론(各論)’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부처와 집권여당은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을 남발,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초래하며 개혁의 당위성을 스스로 실추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부도라는 급한 불은 일단 껐지만 거시경제 여건과 중장기적인 성장기반은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다.
하루 1백40여개의 기업이 쓰러지고 주요 산업설비의 가동률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노동부 집계로만 하루 1천명의 실업자가 거리로 내몰리고 있어 내수기반 악화는 물론 사회불안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경상수지는 개선되고 있지만 ‘유일한 살길’인 수출은 환율급등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10% 미만의 성장률에 머물고 있다.
살(殺)기업적인 고금리와 환율불안, 극심한 내수침체가 어우러져 경제는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속이다. 이에 따른 경제불안 심리 확산으로 새정부의 국정목표인 구조개혁마저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재벌총수들이 연초 ‘개혁 5개항’에 합의한 지 19일로 96일째. △기조실폐지 및 총수들의 책임경영체제 확립 △상호지급보증해소 등에선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주력업종 위주의 사업구조 재편 등 국가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핵심 합의사항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바탕부터 뜯어고치겠다’는 새 정부는 재벌개혁을 유도할 효과적인 가이드라인 제시에 실패하고 있다. 기업 재무구조개선이나 고용문제에 있어서 앞뒤 재보지 않는 돌출성 발언으로 재벌들의 비협조를 초래, 스스로 암초를 만들어낸다. 재벌들 역시 뼈를 깎는 구조개혁보다 인원삭감이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외자유치 계획을 남발하면서 ‘태풍 비켜가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외환위기 근원(根源)의 하나인 기아자동차 처리문제를 놓고 정부가 꾸물거리면서 새 정부의 개혁능력마저 시험대에 올랐다.
〈박래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