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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금융계 원싱턴회의]실속 적었던 말의 성찬

입력 | 1998-04-18 20:12:00


17일 밤 세계 22개국(G22)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총재 연석회의가 끝나자 알퐁스 베르플레츠 국제결제은행(BIS)총재가 의장국인 미국의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에게 물었다. “오늘 우리가 무엇을 했나요.”

G22 회의는 서방선진 7개국(G7), 서방선진 10개국(G10), 국제통화기금(IMF) 잠정위원회에 이어 열린 일종의 총결산회의. 세계경제의 핵심국가대표들이 모여 밤 늦게까지 회의를 계속했으나 뾰족한 성과없이 공허한 난상토론만 벌이자 이같은 질문이 튀어나온 것.

루빈장관은 머뭇거리며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에게 답변을 미뤘다. 그린스펀의 답변이 걸작.

“나도 아침 8시부터 G10이다 뭐다 해서 줄곧 회의장을 찾아다니다 보니 피곤해서 회의도중 가끔 졸았다. 그러나 뭔가 손에 잡힐 것 같은 가능성을 갖고 이 자리를 떠난다. 한번 두번 더 만나면 그걸 손에 쥘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세계적 관심속에 워싱턴에서 한주일동안 계속된 각종 회의에서 구속력있는 결정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IMF 잠정위원회는 공동성명과 윤리강령을 채택하고 재정상태의 완전공개와 금융감독 강화 등 각종 대책을 결의했지만 선언적 성격이 짙다. 재정정보 공개와 단기 투자자본규제를 회원국의 자발적인 의사에 맡기기로 했기 때문.

IMF를 중심으로 위기관리를 강화하기로 했지만 IMF에 공개 경고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채택되지 않았다. IMF가 경제위기에 빠진 회원국에 공개경고할 경우 회원국의 경제가 일거에 무너질 위험성을 우려한 탓이었다.

만족스런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린스펀의 평가대로 국제금융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기초는 마련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회의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되고 공감을 얻은 투명성 감독강화, 그리고 위기에 대한 민간자본의 공동책임론 등이 그것이다.

이 세가지 키워드는 앞으로 계속될 실무급 접촉에서 가닥이 잡혀 점점 구속성있는 합의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