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코프와 트래블러스그룹의 합병으로 세계최대 은행이 탄생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리고 1주일도 안돼 뱅크 오브 아메리카와 네이션스뱅크가 뒤질세라 합병을 선언했다. 규모면에서의 세계 정상은 그래서 1주일만에 다시 자리바꿈을 하게 됐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위치한 네이션스뱅크와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둔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합병은 특히 미국 전체를 커버하는 최초의 은행을 탄생시켰다는 점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은행들은 외형보다 전문화에 치중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에 시작된 기업간 인수합병으로 규모의 경제 효과가 확인되자 금융계도 뒤늦게 합병의 열풍에 합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은행들이 합병을 통해 노리는 것은 총자산증가와 영업지역확대라는 가시적 효과보다 취급 업무의 다양화와 지점감축을 통한 군살빼기에 있다.
▼일본과 유럽계 은행에 밀려 세계 10위권 밖에 머물던 미국 은행들의 몸불리기 경쟁은 전세계 금융기관에 일대 긴장감을 안겨 주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경쟁력면에서 선두를 달리던 미국은행들이 발군의 시스템에 덧붙여 규모의 경제까지 확보한 이상 상대하기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일본과 유럽에서 은행들간 통폐합이 예고되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세계 금융계는 바야흐로 ‘메가 머저’ 폭풍전야와 같은 모습이다.
▼우리 금융계도 이 태풍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정치적 요구에 의해 소형 은행들이 무더기로 탄생하고 지점개설 경쟁과 엄청난 규모의 부실채권 멍에로 체질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것이 우리 금융계의 현실이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존립의 능력조차 의심받고 있는 은행들도 수두룩하다. 메가 머저에 대한 우리 은행들의 대처가 주목된다.
〈이규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