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아들은 교복만 보면 몸을 ‘덜덜’ 떨어요.”
96년 2월17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교생 ‘집단 폭행’사건.
당시 서울 Y고 2학년생이던 장모군(18)은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으면서 ‘행동이 굼뜨다’는 이유로 같은 반 급우 5명으로부터 1년여 동안 집단폭행을 당했다.
이 ‘한국판 이지메’는 가해학생들이 경찰에 구속되는 것으로 마무리됐고 사람들의 뇌리에서도 잊혀져갔다.
그러나….
장군의 어머니 최모씨(54·서울 K초등학교 교사)가 최근 동아일보를 찾아와 털어놓은 사연에는 ‘이지메의 참혹한 여운’이 계속되고 있었다.
“학교와 수사당국은 이런 일의 재발방지를 굳게 약속했죠. 그러나 아들은 급우들 사이에서 계속 협박을 당했고 질시와 따돌림에 고민했습니다. 몇차례 학교에 호소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죠.”
두려움에 떠는 아들의 손을 잡고 매일 등하교길을 함께 했다. 그러나 아들의 간질과 정신질환은 점점 깊어만 갔다.
그렇게 지낸지 1년여. 97년5월 최씨 가족은 미국으로 쫓기듯 이민을 떠났다. 하지만 미국도 그들의 도피처는 되지 못했다.
“떠난지 두달만에 다시 돌아왔죠. 한국에 오니 외부인과 대면하는 것을 꺼리는 아들의 증세가 더욱 악화되더군요.”
결국 최씨는 지난해 9월 남편과 두아들을 또다시 미국으로 떠나보내고 혼자 남았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
하지만 최씨의 시련은 계속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최근 교육청에서 그의 이민경력과 관련, 교사자격여부를 문제삼는 등 시비가 일었다. 최씨는 결국 퇴직금이라도 받기 위해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이젠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돼버렸어요. 왜 ‘이지메’의 피해자인 우리 가족이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이헌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