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감축이냐, 일감나누기냐.’
노사 양쪽의 두 논리가 팽팽히 맞서면서 기업들의 대규모 정리해고가 올해 노사문제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사용자측은 현재의 인력과잉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인력감축밖에 없다는 입장이고 노조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감나누기(Job Sharing)’로 정리해고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리해고가 임박한 현대자동차의 경우 노사 양쪽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첨예하게 맞서 있다.
▼심각한 기업의 인력과잉〓지속되는 내수판매 부진으로 재고가 넘쳐나면서 기업마다 생산축소에 돌입했지만 성수기때 인력을 그대로 안고 있어 인건비 부담이 과중한 실정.
총 근로자가 4만6천명에 이르는 현대자동차는 자동차판매부진으로 작년10월 100%에 이르던 가동률이 현재 45%수준으로 떨어졌다. 1일2교대 잔업4시간으로 총20시간씩 돌아가던 생산라인이 1일1교대로 8시간씩 단축됐다.
즉 근로자1인당 하루평균 근무시간이 10시간에서 4시간으로 줄었다. 하루8시간 근로 기준으로 보면 하루걸러 하루씩 일하고 있는 셈. 생산라인별로 아예 일주일씩 조업을 중단하는 일도 빈번하다.
이같은 현상은 현대자동차뿐만 아니라 만도기계 등 자동차부품 협력업체를 비롯한 거의 전 제조업체로 확산되어 있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근로자 1백인이상 8백96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44.4%가 인력과잉상태이며 66.7%가 인력의 10%이상이 과잉이라고 응답했다.
▼사측 ‘인력감축만이 유일한 대안’〓현대자동차 사측은 현재 인력의 20%가량을 과잉인력으로 보고 근로시간 단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
근로시간을 단축한다 해도 현행 단체협약상 통상임금(기본급+하루2시간 잔업수당)의 70%를 보전해 줘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 절감효과는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하루평균 근무시간이 작년10월 10시간에서 지난달 4시간으로 줄었는데 생산직 1인당 월 통상임금은 평균 1백48만8천원에서 1백27만8천원으로 14.1% 줄었을 뿐이다. 실제근로시간당 임금은 오히려 높아졌다는 얘기다.
이 회사 관계자는 “내수부진으로 수출밖에 길이 없는데 생산대수당 인건비가 높아져 수출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며 “인력을 조정하지 않고서는 회사가 존립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있다”고 말했다.
▼노측 ‘정리해고는 절대 불가’〓현대자동차 노조측은 현 경영상황에 대한 회사측 설명을 일부 수긍하면서도 올해 적정 생산수준을 감안하면 근무시간 단축으로 정리해고를 회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경기상황을 감안하면 현대자동차의 올해 적정 생산수준은 총 생산능력(1백50만대)보다 30∼40%가 적은 95만대선이며 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주당 근무시간을 1백50만대 생산에 필요한 56시간에서 38시간으로 줄이면 된다는 계산이다.
그렇지만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발생하는 유휴인력은 휴가 등으로 전환해야하며 줄어든 근무시간에 대한 임금도 무급으로 처리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민주노총도 정리해고 절대불가 원칙을 고수하며 대규모 해고시에는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
윤우현(尹于鉉)민주노총 정책부국장은 “경영주가 경영합리화나 체질개선 등으로 경영비용을 줄이려는 노력은 안 하고 가장 손쉬운 인력부문만 손대려 한다”며 “기업의 부실경영 책임을 모두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타협점은 없는가〓인력감축문제가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대부분의 제조업 사업장에서 초미의 이슈로 등장했다. 5,6월로 대규모 정리해고가 임박한 분위기지만 노사 양측 다 일방적인 결론이 날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고 있다.
경총 관계자는 “사업장마다 20∼30%의 인력이 과잉상태인 현상황에서 근로시간 단축만으로 정리해고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노사간에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라며 “결국 노사간에 적절한 협상을 통해 일정부분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정부분은 인력감축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영이·정재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