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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민병욱/루스벨트를 닮으려면

입력 | 1998-04-22 19:46:00


뉴딜정책으로 30년대 미국의 경제공황을 탈출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본받고 싶어한다는 얘기는 흥미롭다. 김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루스벨트와 김대중의 닮은 점’을 적극 홍보하는 것도 그리 비판적으로 보고 싶지 않다. 빼박듯이 닮아 제발 이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워낙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 다 국가재난의 시기에 대통령이 됐다든지 낙선체험이 있다는 것, 대중연설을 잘했으며 후천성 장애인이었고 불우한 사람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는 등의 닮은 점만 골라 홍보한다고 김대통령이 루스벨트처럼 잘한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 루스벨트만큼, 아니 그보다 더욱 노력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투명한 정치, 정책으로 국민의 신뢰를 쌓아가려는 노력이 지금 김대통령에겐 너무나 절실하다.

루스벨트는 국민의 믿음을 언론과의 열린 관계에서 찾았다. 라디오를 통한 유명한 노변정담(爐邊情談)은 물론이고 백악관 출입기자들과 솔직하고 꾸밈없는 대화를 통해 한켜한켜 믿음을 쌓아갔다. 기자들과 포커를 하고 술 취한 기자의 험담까지 웃으며 받아넘긴 일화는 유명하다.

루스벨트에 비판적이었던 한 신문의 기자가 대통령이 일부러 주선한 포커에서 돈을 잃고 “우리 사주(社主)의 돈이 ‘빌어먹을’ 뉴딜의 돈보다 훨씬 낫다”고 푸념했다. 놀란 공보비서관이 그 기자를 내보내려 하자 대통령은 눈짓으로 말렸다. “놔두게, 대통령 앞이라도 하고 싶은 얘기는 해야 돼”라는 뜻이었다.

대통령이 기자들과 함께 포커를 한 것은 상식으론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더구나 당시 미국은 대공황기. 하루가 다르게 경제위기 극복책을 내놓을 때였다. 비록 근무시간 후라고 해도 대통령이 한가롭게 포커를 한 것이 좋게 보일 리 없다. 루스벨트라고 그것을 몰랐을까. 아닐 것이다.

때문에 이 일화는 다른 각도에서 읽어야 한다. 국난 극복을 위한 경제개혁을 추진하면서 루스벨트가 잃지 않으려 노력한 건 첫째도 둘째도 오직 국민의 믿음뿐이었다. 기업가든 소비자든 국민 모두가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만 지닌다면, 또 자신이 그런 믿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개혁은 반절 성공한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런 자신의 생각과 정신을 국민에게 이어주는 가교는 매스컴임을 확신했고 이를 통해 솔직한 소신을 전파했다. 주2회 기자회견을 어김없이 지켰고 미진하면 노변정담을 통해 국민을 직접 설득했다. 자신을 철저하게 ‘열어’놓은 것이다.

지금 우리 청와대는 기자들의 비서실 출입을 금하고 있다. 공보수석 등 관련비서관이 브리핑을 한다지만 일방적인 전달 형식에 그친다. 대통령에의 접근은 아예 금기사항이다. 대통령의 인간적 고뇌나 국난극복을 위한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번민 같은 것은 알래야 알 수도 없다. 취재가 제한돼 있으니 제공하는 뉴스가 가공된 것인지의 여부도 검증하기 어렵다. 자신을 ‘닫아’놓은 상태에서 믿음만 얻으려 한다면 이처럼 허황된 일이 없다.

김대통령은 최근 “비판없는 찬양보다 우정어린 비판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찬양은 잘 모르겠으되 우정과 비판을 구하려면 허물이 없어야 한다. 감추고 만남조차 꺼리면서 비판을 감수하겠다는 말은 수사(修辭)에 불과하다.

대통령 본인은 물론이고 그의 비서실조차 폐쇄하면서 무슨 비판이니 우정을 바란다는 말인가. 루스벨트를 닮으려면 그의 열린 마음부터 닮아야 한다.

민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