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은 차남 현철(賢哲)씨의 정치적인 야심을 잘 알고 있었다. 김전대통령은 현철씨의 정치입문을 원했지만 정치적 상황이 이를 허락하지 않자 몹시 안타까워했다.
김전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한 인사는 96년 1월 조지 부시 전미국대통령이 방한했을 때의 일화를 소개했다.
한국 도착 다음날 아침 부시 부부는 김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조찬을 함께 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하던 부시가 김대통령에게 “자식이 몇이냐”고 물었다.
“아들 둘에 딸 셋인데 큰 아들은 사업을 하고 있고 둘째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자 부시는 “정치에 관심있는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다.
김대통령은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면서 이렇게 답변했다.
“실은 차남(현철씨)이 정치에 관심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아버지가 대통령이면 자식이 정치에 입문하는 것에 대해 여론이 아주 부정적이어서 정치에 입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시는 김대통령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정치에 입문한 자신의 두아들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큰 아들이 텍사스 주지사에 당선된 얘기부터 둘째가 플로리다 주지사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일, 큰아들이 2000년대 미 공화당의 대통령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착잡한 표정으로 얘기를 듣던 김대통령은 이내 다른 주제로 화제를 돌렸다.
결국 현철씨가 ‘소통령’이라는 말까지 듣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공개적인 정치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병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