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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이민 꿈과 현실]캐나다 토론토 현지의 삶

입력 | 1998-04-26 19:39:00


‘지옥에서 양반처럼 사느냐, 천국에 가서 밑바닥 생활이라도 감수하느냐.’

캐나다 동부 토론토 다운타운 부근 블루어가(街). 한글 간판이 즐비한 이곳 한인촌에서 만나는 이민자들이 한결같이 털어놓는 얘기다.고국에서 삶에 찌들렸던 이들. 잘나가는 대기업 직장까지 훌훌 털어버리고 캐나다를 제2의 고향으로 삼은 사람들. 이 거리에는 20,30대 이민자들이 요즘 눈에 띄게 늘어났다. IMF한파가 불러온 현상으로 분석된다.

이민1세대 한인들은 영어가 잘 안통하고 직장도 구하기 어려워 음식점 커피전문점 식료품가게 운영 등에 주로 종사한다.

“더 이상 술 마시다가는 제 명에 못 살 것같아 한국을 떠났습니다.”

“사교육비가 부담스럽고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가족과 함께 ‘그림같은 집’을 짓고 오붓이 살고 싶었어요.”

한국에서 D증권 차장으로 근무했던 이진현씨(가명·37). 아내와 외동딸을 데리고 지난해 4월 이곳으로 이주해왔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이민이나 확 가버릴까’고 되뇌었다는 그는 “솔직히 말해 ‘이민병’을 치료하러 왔다”고 말한다.

이민생활 1년을 보낸 그는 “아내와 아이는 잘 적응하는데 오히려 내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까’하고 자주 고민했다”고 고백한다.

이민온 뒤 백수로 지내다 얼마 전 한국계 출판사에 수습사원으로 취직했다. 주5일 근무에 오후 5시가 되면 퇴근하는 그는 “경제적으로 여유는 없지만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어 이젠 만족한다”고 말한다.

한해 캐나다로 이민오는 한국인은 3천명 가량. 30대가 가장 많다. 지난 해는 3천9백18명이 이민왔다.

그러나 끝내 정착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역(逆)이민자도 해마다 3백명에 이른다. 게다가 한국에 돌아온 역이민자들이 다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캐나다로 재이민오는 ‘역역(逆逆)이민자’까지 있다.

이민생활은 ‘가정 문화’까지 바꾼다. 이혼이 자유로운 나라 탓인지 한인교포 사회에는 이혼이 잦다.

블루어가에서 호산나음악학원을 운영하는 박상옥(37) 석희숙씨(46) 부부. 이들은 금슬이 좋아진 사례. 두 사람은 “한국에선 연상의 여인과 함께 산다는 이유로 따가운 시선을 받았지만 여기서는 서로 취미생활을 가꿔 애정이 더 깊어졌다”고 말한다.

이민자 중 ‘남자 가장’의 고민이 가장 크다. 해만 지면 집에 돌아오는 사회분위기라 ‘너무 심심하다’는 얘기. 친구나 선후배끼리 어울려 근사한 술자리 한번 가질 기회가 거의 없다.

교포들은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터진 이후 고국의 친척과 친구들로부터 이민 문의 전화를 자주 받는다.

현지 이민알선업체인 유니버설이민원의 박선이원장은 “이민은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영어실력을 길러 와야 생활적응과 구직에 유리하다”고 조언한다.

만약 이민을 꿈꾸고 있다면 프로그래머 엔지니어계통의 전문기술이나 뛰어난 영어실력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막일’ 밖에 할 게 없다는 것.

한 이민자의 뼈있는 한 마디.

“인생은 선택일 뿐이다. 선택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준비되지 않는 삶은 그만큼 고달프다.”

〈토론토〓김종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