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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한국통신은 전화설비비 돌려줘야

입력 | 1998-04-26 19:39:00


한국통신이 전화가입자들에게 돌려주기로 약속했던 4조4천억원의 설비비를 사실상 반환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특히 설비비 일부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월간 기본료를 두배로 올리겠다는 발상은 전화가입자에 대한 협박으로밖에 볼 수 없다.

신규 전화가입시 내는 설비비(전국 평균 가입자당 21만원)는 전화적체가 극심했던 70년8월 막대한 시설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나중에’ 돌려주겠다는 약속 아래 한국통신이 거둬들인 돈이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통신인프라가 선진화되고 전화가입자가 2천만명을 넘었는데도 한국통신은 이 돈을 돌려주기는커녕 지금까지도 설비비를 계속 징수하고 있다. 전화를 해지할 때 돌려준다고는 하지만 전화해지율이 지극히 낮은 현실을 감안할 때 설비비는 한국통신이 무상으로 국민의 돈을 빌려쓰는 방편이 되고 있다. 경우가 비슷한 SK텔레콤은 당초 가입자당 65만원씩 받았던 설비비 8천억원을 돌려줘 정부투자기관인 한국통신과는 대조를 보였다.

한국통신은 여론의 반발과 공정거래위의 반환촉구에 따라 설비비를 올해안에 돌려주겠다고 작년에 약속했다. 그런 한국통신이 이번에는 설비비 반환을 원하는 가입자에게 10만원의 가입비를 제외한 나머지를 돌려주는 대신 기본료를 현행 월간 2천5백원에서 5천원으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매달 기본료를 두배로 내면서 설비비 일부를 돌려받든지 아니면 기본료를 그대로 유지하는 대신 설비비를 포기한채 잠자코 있든지 둘중 하나를 택하라는 것이다. 아무리 가입자가 약하고 정부투자기관이 강하다 해도 남의 돈을 이자 한푼 안내고 최장 28년까지 쓰다가 기껏 내놓은 방안이 이 정도라니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설비비를 이미 투자재원으로 쓴데다 정부가 각종 기금으로 가져가는 바람에 설비비의 자력상환이 불가능하다는 한국통신측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리고 회사 주식을 설비비 대신 나눠주는 방안을 제시했다가 정부의 동의를 구하지 못해 포기했던 한국통신측 노력도 감안할 수는 있다. 그러나 방법이 정 없다면 전화사용료에서 매달 얼마씩을 감해주는 방법으로라도 설비비는 가입자에게 반환해야 한다. 어차피 돌려줘야 할 돈이라면 비록 경영에 당분간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따로 재원을 마련할 필요가 없는 이 방법을 고려해 봄직하다.

이 자금의 상당부분을 갖다 쓴 정부도 마땅히 책임을 느껴야 한다. 설비비 반환이 한국통신만의 문제인 것처럼 외면하지 말고 정부가 앞장서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성의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