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두달여만에 돌아온 너와 손자를 보니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고 감사했다. 새 생명을 선물로 시부모에게 안겨주는 예쁘고 착한 네가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사돈 어른은 또 얼마나 애를 썼을고.
예정일을 20일 앞당겨 친정에서 아들을 순산하고 35일 만에 집에 왔으니 한달 이상을 친정 부모님이 고생하셨구나.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네 시아버지는 손자의 이름을 재철이라 이름지었단다. 재철이를 받아안고 보니 기쁘기 그지 없었다.
30여년전 두 아들을 낳고 가난과 싸우며 몸부림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할머니가 됐으니 세월이 쏜살같이 빠름을 절실히 느낀다. 뒤를 돌아보면 좋은 날보다는 푸슈킨의 시를 마음에 새기며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무던히도 노력한 기억만 남는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많은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우산을 들고 아이를 위해 학교를 가 본 기억이 나에게는 단 한번도 없다. 빈곤한 삶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나는 여자로서가 아닌 어머니로서 인내하곤 했단다.
삶에 충실했고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덕분에 작년에는 3층 집을 지었다. 우리는 정이 든 옛집에 그냥 살기로 하고 새집은 새출발하는 너희들에게 기꺼이 내주었지.
백년해로의 길에 들어선 너희들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동반자로서 살아가길 바란다. 사랑과 존중과 인내와 노력을 바탕으로 삶의 긴 여정에서 돌다리도 두들기며 건넌다는 삶의 지혜를 터득하거라. 부부간에는 순종과 사랑, 특히 상대방에 대한 사려깊은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네 시아버지가 너희들에게 하얀 봉투를 따로따로 내미는 깊은 마음을 읽으면서.
양인선(서울 은평구 녹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