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뒷문 좀 열어주세요. 그 사람들이 또 찾아왔어요.”
29일 오후5시경 서울 광진구 노유동 S중학교 교무실. 숨을 헐떡이며 교무실에 들어온 2학년 김모군(16)은 발을 동동 굴렀다.
김군의 말에 창밖을 내다본 담임교사 정모씨(39). 4명의 중년남녀가 현관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지난해말 조그만 봉제공장을 운영하다 부도를 내고 잠적한 김군 부모의 ‘소재’를 알아내려는 채권자들이었다. 이달 들어 벌써 세번째다. 정씨는 사환에게 열쇠를 받아 학교 뒷문으로 김군을 ‘도피’시켜 주었다.
국제통화기금(IMF)한파 이후 빚에 쫓긴 부모들이 자취를 감추자 채권자들이 자녀의 학교에까지 찾아와 부모의 거처를 대라고 다그쳐 어린 학생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용산구 원효동 N초등학교의 경우 지난달초 학생의 집 전화번호나 주소 등을 묻는 채권자들의 전화가 하루 10여통씩 걸려왔다. 직접 학교까지 찾아온 경우도 한달새 10여건이나 된다.
이들은 친척이라고 속여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 연락이 끊겼다. 집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거나 경찰관을 사칭, “수사상 필요하다”며 학생의 인적사항을 묻는다.
학교측은 “학생보호차원에서 가르쳐줄 수 없다”고 거절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일부는 욕설을 퍼부으며 소동을 피우기도 한다.
종로구 필운동 B여고 한모 교무주임(56)은 “최근 20일 가량 무단결석한 학생이 있어 알아보니 학교로 찾아온 채권자들을 피해 지방 친척집에 내려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며 “채권자들을 피해 전학가거나 자퇴한 학생도 올들어 2명이나 생겼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일선 학교에서 이같은 사례를 잇따라 보고해와 어떤 경우에든 학생들의 인적사항을 함부로 가르쳐 주지 못하도록 했다.
〈선대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