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방송 특히 텔레비전은 ‘제2의 신(神)’이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방송이 이 시대 개혁에 중요한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특히 KBS는 진정한 공영방송 이념을 구현하는 내부적 개혁과 좋은 방송을 통한 사회적 개혁이라는 두가지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KBS는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좋은 공영방송의 이념을 구현하기에는 미흡했다. 특히 민영방송과의 편성 차별화와 고품질화, 경영 효율화와 투명화, 보도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확립했다고 보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다.
▼ 民放과 품질로 차별화를 ▼
KBS 개혁에 참고할 만한 모델로는 영국의 BBC나 일본의 NHK를 들 수 있다. 민방과 다름없는 이탈리아 공영방송이나 너무 경직된 프로그램으로 국민의 인기를 잃은 독일, 제도적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프랑스에 비해 영국과 일본은 안정되고 모범적인 공영방송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KBS 신임 사장 역시 취임사에서 KBS가 지향해야 할 모델로 BBC를 지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의 BBC는 시장 원리가 지배하는 세계적 방송환경 속에서 새로운 공영방송의 위상을 정립했다. BBC도 한때는 개혁에 인색해 심한 비판을 받았다. 대처 전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시절 “BBC는 급료수준이 높고 직원의 학력도 높으며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데도 자기개혁에 인색한 가장 비효율적이고 전근대적인 조직”이라고 비난한 적이 있다.
그후 BBC는 강도 높은 개혁을 실행, 영국 국민이 자랑하는 공영방송의 모델로 태어났다. 개혁의 내용은 ‘시청자 제일주의’ ‘프로그램의 차별화와 고품질화’ ‘효율성 제고’ ‘독립성 보장’ ‘경쟁력 강화’ ‘선택 폭의 확장’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다채널 시대를 맞은 많은 방송사가 ‘가치보다는 흥미’ ‘교양보다는 오락’을 앞세워 시청률 경쟁에 연연할 때 BBC는 ‘감상지수 측정법’을 고안하는 등 프로그램의 질 향상에 주력했다.
좋은 공영방송은 민영방송과의 시청률 경쟁을 초월해야 한다. 일본 NHK의 개혁을 선도했던 시마케이지 전회장이 문예춘추를 통해 “시청률에 연연하는 PD는 NHK를 떠나라”고 한 말이 기억난다. 공영방송은 ‘양보다는 질’ ‘원하는 것보다는 필요한 것’을 찾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를 위해 BBC는 ‘다양한 의견의 반영’ ‘공공 정보의 제공’을 비롯해 프로그램의 형태 스타일 소재 시간 대상 시청자의 차별화를 철저히 기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방송은 오락 제공과 상업화에는 성공했지만 문화 예술 교육매체로서는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다.
특히 창의성 발휘 면에서는 ‘모방왕국’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취약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 BBC는 제작자 선택제도를 취해 제작을 개방했고 그 결과 다양성과 창의력 추구, 그리고 효율성 제고에 큰 성과를 올렸다.
다음으로 경영 특히 재정은 KBS도 BBC처럼 투명성을 살려 예산 집행 사항을 국민에게 공개했으면 한다. 만약 광고를 계속해야 한다면 블록 광고나 제한 광고, 중소기업 광고채널 같은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보도나 토론 프로그램에는 광고를 배제하는 것도 시청자로 하여금 주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예산집행내용 공개하길 ▼
BBC보도의 정확성과 제도적 독립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1, 2차대전 전과(戰果) 발표나 포클랜드 전황 방송은 영국 정부를 격노하게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보도’라는 칭호를 BBC뉴스에 안겨주었다.
일찍이 언론학자 슈람은 큰 방송사의 사장을 두고 컬럼비아대의 총장과 제너럴 일렉트릭사의 회장 자격을 겸비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KBS가 신임 사장의 취임을 계기로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새로 태어나길 바란다.
김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