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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김기만/관용과 멋의 정치

입력 | 1998-05-03 19:32:00


프랑스가 자랑하는 천재시인 랭보의 타계 1백주년이던 91년 5월의 어느날.

프랑스의 국회의원 장관 주요언론인 등은 자크 랑 문화부장관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랭보의 대표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취한 배’ 등이 적혀 있었으며 말미에 “바쁜 사이사이 정쟁(政爭)과 직업을 떠나 가끔씩 시를 읽는 게 어떨까요”라고 씌어 있었다.

당시 프랑스 정계는 야당이 프랑수아 미테랑대통령의 조기 퇴진공세를 벌이는 등 가파른 대치국면에 있었다.

일상의 정치에 매몰돼 있던 정치인 등은 “‘시가 있는 정치’를 은근히 제시한 이 편지 한 장에 양심이 씻기는 듯한 청량감을 느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지난해 만우절. 발을 다쳐 목발 신세인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예고없이 백악관 브리핑룸에 나타나 침울한 표정으로 ‘긴급뉴스’를 전했다.

“정말 안좋은 소식을 전하게 됐다. 매커리대변인이 백악관의 어두운 계단을 헛디뎌 크게 다쳤다. 임시대변인을 임명….”

CNN은 깜짝 놀라 긴급 생중계를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후 매커리대변인이 클린턴처럼 목발을 짚고 절뚝거리며 브리핑룸에 나타났다. 기자들은 클린턴의 기발한 ‘만우절 조크’를 알아채고 배를 잡고 웃었다.

지난달 30일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전일본총리는 “꽃잎이 흩어짐은 때를 알기 때문”이라는 명구 한 마디를 남기고 평소의 약속대로 60세의 나이에 정계를 은퇴해 가슴을 찡하게 했다.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세 번 살려보내는 관우의 도량과 사내다움은 삼국지의 백미중 하나로 꼽힌다.

정쟁에 열중하고 있는 우리 정치인들은 ‘관용과 멋의 정치’를 말해주는 이런 삽화들을 정녕 모를까.

김기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