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금을 깨서 새 승용차를 사야하는 사람의 심정을 아십니까.”
국내 모그룹 경남지역 계열사에 근무하는 김모대리(33).
그는 최근 2년가량 정성껏 관리하며 타고 있던 ‘멀쩡한’ 승용차를 놔두고 같은 그룹내 자동차회사에서 생산하는 승용차를 구입해야 했다.
3월중순 회사측에서 “최근 그룹의 자금사정이 극도로 악화됐다”며 대리급은 1대, 과장급은 2대 이상씩 계열사 중형차를 팔라는 ‘판매 할당량’이 떨어졌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최우선으로 정리해고를 당할 것이라는 공포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룹 본사가 수도권지역에서 판촉행사를 시작했다가 사원들의 거센 반발과 함께 3월초 판촉행사를 중지한 이래 최근에는 지방 계열사에서 사실상 ‘강매’와 다름없는 판촉행사가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
판매조건은 좋았다. 36개월 무이자할부에다 차종에 따라 차값의 15∼25% 정도를 깎아준다는 파격적인 조건.
그러나 있는 차도 팔아치우려는 IMF 시대에 목돈을 들여 차를 사려는 사람은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이웃사촌과 친구 친척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모두 고개를 저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김대리. 결국 지난 2년동안 푼푼이 모아둔 적금을 해약, 자신에게 할당된 차 한대를 구입했다.
갖고 있던 승용차는 중고차 시장에 내놨지만 ‘팔렸다’는 소식은 오지 않고 있다.
김대리는 조금 사정이 나은 편. 빚을 얻어서 새 차를 사거나 새 차를 사자마자 바로 중고시장에 내놓은 동료도 많다.
철없는 아이들만 좋아서 “아빠가 새 차를 샀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닌다.
김대리는 요즘 ‘애물단지’같은 새차의 시동을 걸 때마다 ‘정리해고를 당하지 않기 위한 생존비용’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달랜다.
〈이헌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