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세입자와 전세금 분쟁을 간신히 매듭지은 집주인 이모씨(47·서울 용산구 보광동).
그는 요즘 ‘가난했던 날의 행복’을 자주 떠올린다.
“아내와 손을 맞잡고 ‘번듯한 우리집을 마련할 때까지 조금만 더 고생하자’고 하던 시절이 오히려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이씨 부부가 지하 1층에 지상 2층짜리 ‘우리집’을 마련한 것은 지난해 9월. 어린 외아들을 친척집에 맡겨가며 10년 넘게 맞벌이해 장만한 집이었다.
집 살 돈이 모자라 2천만원을 대출받고 세입자들의 전세금을 떠안은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큰 걱정은 아니었다.
복덕방 주인도 “전세계약을 새로 할 때 1천만원씩만 올려 받으면 빚을 갚고도 남는다”며 이씨 부부를 안심시켰다.
그런 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국제통화기금(IMF)시대의 전세대란이 닥쳐왔다.
남 못지않게 셋방살이를 했던 이씨 부부에게 전세금은 늘 오르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내집을 마련하고 나니 난데없이 전세금이 폭락하는 바람에 이씨 부부는 어느덧 전세금 반환소송의 피고가 돼버린 것.
5년간 지하층에 살던 세입자가 “지하에 습기가 많아 칠순 노모의 건강에 안좋다”며 보증금 3천5백만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낸 것.
회사형편이 어려워 몇달째 월급도 못받은 이씨는 결국 “우리가 지하로 내려가 살테니 1년만 더 있어달라”고 호소했다.
결국 세입자는 추가로 5백만원을 내고 이씨 부부는 이달 중에 자신들이 살던 1층을 내주기로 합의했다.
“집을 팔려고 내놓았어요. 좋은 시절이 오기를 기다릴 여유가 없어요. 사글세를 살더라도 속 편하게 살고 싶어요.”
이씨 부부의 ‘내 집 마련의 꿈’이 전세대란의 ‘파편’을 맞고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부형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