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가 전국적인 폭동과 유혈사태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반정부 시위는 날이 갈수록 격렬해져 군과 경찰의 발포로 이미 시위대 6명이 사망하고 80여명이 부상했다는 현지 보도다. 군과 경찰에 무력으로 대항하기 위한 민병대까지 조직되었다고 하니 이대로 가다가는 어떤 비극적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물가폭등과 실업 등 경제문제에 초점이 맞춰졌던 시위는 이제 수하르토정권의 퇴진을 정면으로 요구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지난 33년간 계속된 족벌 장기집권의 청산과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개혁이 반정부 시위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재야세력과 학생들이 중심이었던 시위 규모도 시민과 지식인 등 모든 계층이 본격 가담하면서 범국민 저항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마치 우리의 4·19혁명과정을 되풀이하는 듯하다.
세계 각국의 역사를 보더라도 국민의 반정부 시위를 무력으로 강제진압하려 한 정권은 오래 지탱하지 못했다. 그 정권은 결국 국민과 극한대립만 자초하다가 비참하게 퇴진할 수밖에 없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군과 경찰을 동원한 지금의 무력진압 방법은 일시적인 수습책이 될지는 몰라도 근원적인 문제 해결책은 못된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의 평화적 시위를 허용하고 더 이상 인권탄압이 없도록 하라는 미국의 ‘충고’를 수하르토정부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더 이상의 국가적 불행을 막기 위해서도 그렇다.
이제는 수하르토대통령 스스로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체제 유지에만 집착하고 정치개혁을 계속 외면한다면 자신의 절대 지지세력인 군부도 결국은 국민의 편을 들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오늘의 사태도 따지고 보면 권력기반 유지를 위한 수하르토정권의 비민주적 통치방식에서 비롯 됐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족벌 경제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경제개방조치를 취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마저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국민은 그런 수하르토정권에 정치 경제 전반에 걸친 총체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사태가 동남아 경제권에 미치는 영향은 심대하다. 벌써부터 동남아 각국의 통화가치와 주가가 떨어지고 경제가 동요하는 등 곳곳에 여파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도 절대 무관한 입장이 아니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해 당사국들 간의 적절한 외교적 조치도 함께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인도네시아에는 우리 교민도 1만5천여명이 살고 있고 직간접 자본투자를 한 것만 해도 1백억달러가 넘는다. 교민의 신변보호와 피해 최소화를 위한 대책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