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부진하던 공기업의 민영화가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민영화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공약으로 제시됐지만 한번도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증권시장의 취약이나 경제력 집중문제가 등장했고 노조나 관련 기관의 이해관계가 현실적 장벽이 되기도 했다. 물론 궁극적인 원인은 정부 당국의 의지부족이었다.
이젠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민영화가 현재의 경제위기를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민영화의 당위성은 더 역설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국내여건의 한계를 뛰어넘는 전략이 필요할 뿐이다. 해외매각을 포함한 과감한 대안들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왜 외국인에게 귀중한 우리의 공기업을 팔아야 하는가.
첫째, 우량 공기업을 매각하여 외화수입도 증대시키고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을 선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출만으로는 외채를 줄여 나가기에 역부족이다. 공기업에 투자된 외자는 우리 땅에 정착된 자산이기 때문에 쉽게 빠져 나가지도 않는다. 민간에 구조조정을 요구하기에 앞서 정부가 솔선수범을 보여주고 선진경영기법을 도입하는 것도 중요하다.
둘째, 국내여건이 취약하여 과거와 같은 방안으로는 민영화를 추진하기 어렵다. 대기업이 구조조정에 쫓기고 있는 상황에서 공기업 매수에 나설 수 없을 것이다.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해도 재벌 특혜나 경제력 집중의 문제를 불러오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본말이 전도돼 민영화는 다시 물건너 가게 될 것이다.
셋째, 기업매각은 제품판매와는 다르다. 수출된 자동차는 외국인이 소유하여 우리가 사용할 수 없지만 기업매각은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은 매각된 뒤에도 우리 땅에서 우리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준다. 매각한다 해도 제품처럼 그 기업을 가져갈 수는 없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국적이 큰 의미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현재는 부분매각이 추진되고 있지만 경영권이 이양된다 하더라도 특별주 하나만으로도 공익에 필요한 규제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선진국에서 나타났던 민영화의 결실들을 우리라고 왜 향유하지 못하겠는가. 이번만은 정부가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정갑영(연세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