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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리뷰]MBC 베스트극장 「반가사유상」

입력 | 1998-05-12 07:08:00


박물관의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그것은 보는 이를 절로 감동시키는 찬미의 대상이다.

8일 밤 10시에 방영된 MBC ‘베스트극장―반가사유상’(극본 김원석, 연출 김승수)’은 또 하나의 반가사유상을 만들어냈다.

평온한 미소 대신 직장에서 쫓겨나고 집에서는 찬밥 신세인 주름살 투성이의 ‘IMF시대 반가사유상’.

IMF로 몰락한 중소기업의 장이사(박인환).

그는 ‘돌상 받은지 30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막노동판에서까지 밀려난 뒤 미술대의 누드 모델이 된다. ‘먹이감’을 쫓는 듯한 주변의 눈초리 세례를 피하다 마침 반가사유상을 보고 자신의 치부를 숨길 수 있다고 생각, 그 포즈를 취한다.

이 드라마가 선택한 누드와 반가사유상은 극한 상황에 몰린 주인공의 상징적인 존재 양식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심리를 군더더기 없이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드라마는 한나절이 조금 넘는 누드 스케치 현장을 배경으로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몇십년에 걸친 장이사의 인생을 담아냈다.

포르노 사진에 관심을 보이던 청소년기부터 기업의 부도, 파혼당할 위기에 빠진 딸, 고시공부를 포기하려는 아들 등 과거의 사건들과 죽음에 대한 상상으로 상징되는 미래가 이어진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려대는 삐삐는 사유 속에 빠진 그를 흔들어 깨워 더욱 비참한 현실로 안내하는 유일한 통로.

“당신 정말 벗었어요? 미쳤어요?”라는 마누라의 고함이나 결혼식에 참석해 달라는 친구의 당부는 그를 더욱 오갈 데 없이 만들 뿐이다.

감정의 절제도 이 드라마의 미덕이다. ‘IMF형’ 드라마의 단골메뉴인 눈물 콧물의 과대한 연출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인간 구실의 한 표상인 문상(問喪)을 포기하고 들이켜는 소주는 얼마나 쓸가. 또 술에 취해 쓰러진 그를 남겨놓은 채 역사를 빠져나가는 지하철의 긴 꼬리는 이 드라마가 담고 싶은 세상의 모습일 것이다.그러나 보수적 성격으로 묘사된 장이사가 누드 모델이 되기로 결정하는 과정은 인력시장의 푸대접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또 딸의 후배가 스케치 중 그를 알아보는 것도 작위적 냄새가 느껴진다.

〈김갑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