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마을에 발음이 부자연스러운 훈장님이 계셨다. 어느날 아이들에게 ‘바람 풍(風)’자를 가르치는데 훈장님이 ‘바담 풍’하고 먼저 읽으니까 제자들도 ‘바담 풍’하고 따라 읽더란다. 훈장님은 아이들의 발음이 잘못됐다며 다시 소리높여 ‘바담 풍’하니 아이들은 역시 ‘바담 풍’하고 따라 읽었다.
얼마전 경기도 교육감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여름 방학중에 시골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다고 한다. 일직 여교사의 복장이 반바지에 슬리퍼 러닝셔츠 차림인데다 셔츠의 앞뒤에는 뜻모를 영문자가 대문짝만하게 씌어 있어 당황했다는 것이다.
엊그제 우리 학교에서는 열린교육 전문강사를 초빙하여 열린교육 연수를 했다. 가장 감동받은 대목은 “나는 아침 저녁으로 우리반 아이들 모두를 한번씩 가슴에 품어준다”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1시간 먼저 출근, 교실문에서 아이들을 기다렸다가 들어오는 아이들을 가슴에 품어주고 아이에 맞는 이야기를 속삭여주며 하교 때도 마찬가지로 일일이 안아 준다고 한다.
교사라는 직업이 다른 직종과 다른 유일한 기준은 어린이가 좋아서 어린이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요즘 촌지수수 청소년비행 등 교육계의 각종 문제도 교사들의 고른 사랑으로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아이를 보면 부모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아이를 보면 가정을 알 수 있듯이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도 알 수 있다. 선생님들 자신이 ‘바담 풍’하면서 아이들에게 ‘바람 풍’하라고 하면 과연 할 수 있을까. 선생님을 잘못 만나 한 어린이의 인생에 흠이 가게 된다면 그 어린이는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이강신(경기 안양시 부흥동·안산 경일초등교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