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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갈등탐구]양창순/「위기의 가정」 남의 탓 말라

입력 | 1998-05-13 19:29:00


모두들 입을 모아 가정의 화목을 말하는 5월.

그러나 올해는 5월이 너무 스산하다. 수많은 가정이 위기 앞에 흔들리고 있다. 실직 5개월째인 한 가장의 고백.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아내가 전적으로 집안살림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생활은 말이 아니지요. 아파트 관리비를 못내 몇 달째 명단이 엘리베이터 앞에 붙어 있습니다. 그걸 볼 때마다 정말 자조적인 심정이 되곤 합니다. 며칠 전 아내와 돈 문제로 심하게 싸웠습니다. 결혼한 지 10년만에 처음으로 아내에게 손찌검을 심하게 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모든 울화를 아내한테 폭발한 거죠. 아내는 지금 이혼하자고 난리입니다.”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 어디 그뿐일까. 실직한 가장들은 그들대로 절망하고 아내들은 연민과 분노 사이에서 갈등하며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다.

해결할 수 없는 나쁜 상황이 지속되면 사람은 누구나 그 책임을 떠넘길 상대를 찾게 된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원망하고 불평하고 심하면 치고 받는 싸움까지 불사하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효과적인 처방은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대량실업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정부가 해결해야 하지만 가정 내의 위기와 문제는 결국 가족 구성원 각자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내가 처한 이 끔찍하고 괴로운 현실을 해결할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자각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자각 위에서 한 발씩이라도 희망을 찾아나가는 것. 그것만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양창순(서울백제병원 신경정신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