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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재홍/日 국수주의의 영웅

입력 | 1998-05-13 19:29:00


45년9월 도쿄의 맥아더사령부가 도조 히데키 등 전범 체포령을 내렸다. 도조의 집을 미군 헌병이 포위하고 나오라고 소리쳤다. 집안의 도조는 주치의가 백묵으로 그려준 자신의 심장부위에 권총을 쏘았다. 그러나 즉사하지 않았다. 병원에 온 미군장성에게 그는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미군장성은 “오늘밤 일을 말하는가, 지난 몇년 동안을 이르는 것인가”라며 냉소했다.

▼일본에서 그 2차세계대전의 A급전범인 도조를 영웅화한 영화가 만들어져 국제사회가 시끄럽다. ‘프라이드’라는 영화 속의 군사법정에서 그는 “대동아전쟁은 일본의 자위권이며 아시아 해방전”이라고 강변한다. 그는 일본군국주의의 총연출죄로 처형된다. 그가 유서에서 일본군의 잔학성을 사죄했음에도 일본인들은 딴 소리다. 중국 외교부는 “침략전쟁의 괴수를 기리는 영화에 분노한다”는 대변인 논평을 냈다.

▼37년12월 난징(南京)에서 마쓰이 이와네 대장 휘하 5만여 일본군이 강간 약탈 학살을 자행했다. 시민 5만7천명을 포함해 총 12만9천명이 살해됐다. 이는 도쿄군사재판 판결에 적힌 공식집계이고 실제로는 30만명 이상이 학살된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미국에서 ‘난징 대학살’이라는 책이 출간됐다. 이에 주미 일본대사가 항의하자 중국대사관은 “일본측의 정확한 역사인식이 양국관계의 중요한 기초”라고 경고했다.

▼96년12월 미국 법무부는 일본전범을 감시명단에 올려 입국을 금지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다음날 한 일본신문에는 히로시마 원폭돔의 세계유산 등록문제가 크게 보도됐다. 태평양전쟁 단죄에 ‘원폭살인’이 맞불로 등장한 분위기였다. 침략전쟁을 일본의 자위권이라고 한 도조는 국가책임론을 편 셈이다. 자신의 죄보다 국가책임을 내세운 그가 일본 국수주의자들의 영웅이 되는 것도 흥미롭다.

김재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