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련 충북지사 후보인 이원종(李元鐘)전서울시장의 어릴적 꿈은 시골의 우체국장.
충북 제천군 봉양면 미당리 벽촌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10㎞를 꼬박 걸어다니며 제천중고를 졸업했다. 그리고 2년제인 국립체신대에 진학, 졸업 후 서울 광화문전화국에 서기보로 들어갔다.
첫 업무는 공중전화 동전 수거. 그러면서 밤에는 성균관대 행정과를 다녔다. 당시 그는 경찰이었던 형의 신혼 단칸방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형님 부부가 잠든 사이 앉은뱅이 책상에서 코피를 쏟으며 공부했다”는 것이 그의 얘기.
그 결과 68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첫 근무지인 공무원교육원 교수부에서 경제학을 강의하다 피를 토하고 쓰러진 적도 있었다. 폐에 밤톨만한 구멍이 뚫렸다는 진단이었다.
병역 면제판정을 받은 것도 이때. “고의 기피 의혹이 있다”는 상대 후보 주장에 대해 그는 “고시공부로 폐결핵과 만성간염에 시달려 입영거부 당했다”고 해명한다.
이후 그는 서울시 행정계장 예산계장 기획담당관에 이어 내무 교통 보건사회 주택 등 4개국의 국장을 두루 거치면서 출세가도를 달렸다. 구청장도 용산 성동 강동 성북 동대문 등 내리 다섯 차례 맡았다.
93년 금의환향(錦衣還鄕), 관선 충북지사가 됐다. 이때 비서실 직원들도 모르게 맏딸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음해 서울시장이 되자 언론에서는 ‘칡뿌리를 캐던 소년이 서울시장 됐다’ ‘공중전화 수금원에서 서울시장으로’라며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얼마 후 성수대교가 무너져 공직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책임 규명을 위한 검찰 조사에서 한때 구속 위기까지 몰리기도 했다.
이후 청주 서원대총장을 지내다 작년말 한나라당에 들어가 이회창(李會昌)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그러나 대선 후에는 한나라당을 버리고 자민련에 입당, ‘양지만 쫓아다니는 해바라기’라는 비난을 들었다.
△충북무역투자공사 설립 △충북신용보증조합 설립 △중소기업종합센터 조기 완공 △도민 감사청구제 도입 △지역 뉴딜정책 추진 △도민과의 정기적 TV대화 개최 등이 그가 내세운 주요 공약이다.
〈송인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