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훤한 대낮에 집에 가려니까 집을 못찾겠더라”는 한 직장인의 얘기를 듣고 웃은 적이 있다.
집만 남의 집 같은 게 아니다. 아니 언제 우리아이 키가 저렇게 컸지? 옆집이 부도나서 집팔고 이사갔다고? 새로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문제는 이렇게 일찍 집에 가서 주변을 둘러볼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이후 동료들이 떠난 자리를 메우기 위해 노동강도는 갈수록 더해가고 있으므로.
사람이 죽기 전이나 지독한 절망에 빠졌을 때 가장 절실하게 떠올리는 것은 부나 명예가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기쁨이라고 한다. 아이들과 함께 웃기, 식구들과 밥먹기, 고향집 흙내음 맡기와 같은…. 그런데 그렇게 기쁨을 주는 일을 어떤 이들은 시간이 없어 못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갑자기주체할수 없이많아진 시간 때문에 불행해하고 있으니 세상은 참 불공평하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기만 참고 견디면’ IMF가 극복되고 실업의 위기도 사라진다는 대통령 말씀을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노동의 종말’을 쓴 제레미 리프킨같은 이는 자동화와 생산성 혁명으로 대량해고의 시대가 왔다며 이같은 우리들의 희망의 싹을 잘라버린다. 그가 제시한 유일한 대안은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보다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당 35시간 근로법을 통과시켰다던가.
만일 모든 사람이 오후 3, 4시쯤 환한 대낮에 퇴근을 한다면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질까. 아이들과 놀이터도 가고 구민회관에 가서 연극도 한 편 볼 수 있다면. 봉급은 훨씬 줄어들더라도 가족 이웃과함께하는 시간이늘어날 수있다면.그리하여일터를 잃었던 옆집 아저씨도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까짓 ‘비아그라’따위는 안나와도 세상이 훨씬 행복해질 수 있을텐데….
김순덕(문화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