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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사원 실질임금 50%이상 삭감 전망

입력 | 1998-05-17 19:21:00


주부 L씨(35·서울 노원구 상계동)는 몇년간 계속해오던 가계부 쓰기를 얼마전 포기했다.

IMF시대, 남편의 월급이 어느정도는 깎이리라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어느날 갑자기 연봉의 절반 가까이 되던 보너스가 몽땅 날아가버리자 가계 운영 계획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특히 매달 나오는 월급의 대부분을 정기적금과 주택융자금 상환 등에 충당하고 생활은 보너스로 해왔는데 요즘엔 적금을 깨고 아이의 학원수강을 끊었는데도 생활이 쪼들리는 실정이다.올해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은 작년보다 얼마나 깎였을까.

노동부 통계상으론 올들어 임금협상을 타결한 1천2백12개 사업장의 평균 임금인상률이 작년 대비 마이너스1.7%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같은 통계를 믿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를테면 자진반납 형식으로 삭감된 임금만 해도 노동부 통계에는 대부분 ‘동결’로 잡혀 현장과는 큰 괴리가 있다.

경총 관계자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기업들이 대부분 보너스 반납, 수당 축소 등으로 임금을 40∼50% 삭감한 것이 현실”이라며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임금은 더욱 더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올해 입사 14년째인 국내의 대표적인 대기업 K차장(42)의 봉급표를 보자.

이 회사는 벌써 노사간 임금협상을 끝냈다. 표면적으로는 임금을 작년수준으로 동결하고 매년 한단계씩 오르던 호봉승급을 정지시켰을 뿐이지만 실제로는 950%씩 지급되던 보너스가 자진반납 형식으로 날아갔다. 게다가 회사측은 사원들에게 연월차휴가 사용을 의무화해 연월차수당도 없어졌다.

작년에 그는 기본급과 수당 등 급여가 2천33만원, 상여금 총액이 1천3백6만원 등 모두 3천3백39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올해 보너스가 나오지 않고 작년말기준 월정급여(1백61만4천4백원)만 받을 경우 연간 총급여액을 계산해보니 1천9백37만원.명목 임금만으로 작년 총급여액보다 42.0%가 깎이는 셈. 여기에다 올들어 급등하고 있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임금은 50%이상 삭감될 전망.

따져보니 K차장의 올해 총급여는 그가 입사 6년차였던 90년과 비슷한 수준이며 임금이 깎이지 않은 작년 이 회사 신입사원 초임(1천9백51만원)보다 낮은 금액.

14년간 앞만 보며 아등바등 쌓아온 ‘공든 탑’이 일거에 무너져내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환율을 감안한 해외구매력을 계산해보면 더 한심해진다. 작년 총급여를 작년 평균 환율(달러당 9백54원)로 계산하면 3만5천달러. 올해는 16일 현재 환율(달러당 1천4백35원)을 적용해보면 고작 1만3천4백98달러로 40%가 채 안된다.

그러나 더 큰 걱정은 앞으로 다가올 감원태풍. 회사는 이미 대규모 감원을 예고해둔 상태로 그 자신이 감원대상에 포함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K차장은 “임금이 절반이하로 떨어져도 대놓고 불만표시조차 못하는 게 요즘 기업의 분위기”라며 “자진반납한 임금을 돌려받는 것은 꿈도 못 꾸겠지만 보너스를 절반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영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