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의 철권통치로 인도네시아를 틀어쥐어온 ‘자바왕국의 제왕’ 수하르토대통령(77)이 과연 물러날 것인가.
아니면 장기독재의 종식과 개혁 및 민주화를 부르짖는 국민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아시아와 세계경제에 금융위기의 먹구름을 다시 몰고올 것인가.
인도네시아의 총체적 위기가 지난해에 이어 다시 한번 세계경제를 뒤흔들 ‘제2의 지진’으로 번지고 있어 지구촌의 눈길이 자카르타에 쏠리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풍부한 천연자원, 2억4백만명으로 세계 4위인 인구, 유럽 중동 아시아를 잇는 ‘생명줄’과 같은 말라카해협, 넓은 국토 등 외양으로는 ‘대국’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1만3천여개의 섬이 좌우 5천1백㎞에 걸쳐 있으며 6백여 종족이 분포한다.
그러나 이 나라의 속내를 보면 장기독재, 친족의 권력과점과 부정부패, 군부의 막강한 영향력, 극심한 빈부차, 종족과 종교의 갈등, 취약한 경제 구조 등 아시아와 중남미의 후발 개도국이 갖고 있는 후진적 요소가 망라돼 있다.
특히 2월말 현재 1천3백억달러의 외채를 안고 있어 인도네시아가 대외채무 지불유예(모라토리엄)나 지불불능(디폴트)상태에 빠질 경우 동남아 등 아시아경제를 강타한 후 세계경제를 뿌리째 흔들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인도네시아의 위기는 크게 볼 때 △수하르토의 32년 장기집권이 불러온 부작용에 대한 국민적 반발로 인한 정치혼란 △지난해 중반이후 악화된 외환위기와 물가폭등에 따른 경제적 불안 △수하르토 일가의 축재와 소수 화교에 의한 경제력 집중에 따른 사회적 갈등 등이며 이런 요소들이 겹치면서 이 나라에 산재한 2백여개의 활화산처럼 폭발하고 있다.
올 2월 이후 시위 약탈 폭동에 따른 발포와 방화 등으로 5백명 이상이 사망하는 유혈사태를 낳은 근본적인 원인은 수하르토의 장기집권과 경제난.
육사를 졸업하고 육군전략사령관에 오른 수하르토는 66년 군부 서열 7위로서 수카르노 초대대통령을 쿠데타로 축출하고 집권했다.
집권초 70달러에 불과하던 1인당 국민소득은 최근 1천달러에 이르렀고 80년대이후 90년대초까지 연평균 6∼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해 한때 ‘아시아의 새끼 용’으로 불렸다.
그러나 지난해 중반 달러당 2천루피아였던 환율이 최근 1만루피아를 기록하는 등 동남아 통화위기의 태풍에 1년도 안돼 국부의 절반가량을 날렸고 외국자본의 철수와 외채난으로 경제기반은 크게 무너졌다.
더욱이 소비자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었고 지난해 이후 엘니뇨에 따른 가뭄에다 삼림화재로 인한 연무(煙霧)피해까지 겹치면서 사회적 도탄을 불러왔다.
이달 들어 본격화된 유혈시위와 폭동의 직접적 계기는 정부지원 중단에 따른 유류가격 70% 인상과 전기료 인상이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자료에 따르면 수하르토 일가의 재산은 4백억달러로 인도네시아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받기로 한 구제금융액 4백30억달러와 맞먹는다.
수하르토의 퇴진 없이는 사태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가운데 미국도 그를 버릴지 껴안을지 고민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장래를 점치기는 아직 이르다.
〈구자룡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