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96년 8월 서울대를 졸업한 이모씨(30). 이씨는 IMF쇼크를 뼈속깊이 느끼고 있다.
그는 요즘 보름째 하숙방에서 담배만 피우고 있다. 머리맡은 빈 소주병으로 너저분하다. 사람만나기조차 두렵다. 꽃피고 새우는 봄이라지만 꽃향기도 느낄수 없고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피지도 못한 ‘청춘’이 낙엽처럼 시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도 대학시절엔 푸른 꿈으로 가득 찼었다. 재수끝에 89년 대학에 입학한 이씨는 군복무를 마친 뒤 고시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데다 가정형편도 어려워 언제까지 고시공부에만 매달릴 수 없었다. 세 동생의 학비를 대는 부모님의 짐을 덜어드려야 했다.
이씨는 결국 졸업과 동시에 취업전선에 나섰다. 서울대 출신이라해서 무조건 취직이 쉬운 것도 아니었다. 외국계 회사 등을 노크하며 한해를 넘긴 이씨는 점점 초조해졌다. 그러던 지난해 가을 IMF찬바람이 불어닥쳤다. 그렇다고 구직노력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11월초 가까스로 S보험사에서 취직통보를 받고 신년초부터 출근키로 결정됐을 때 이씨는 뛸 듯이 기뻤다. 곧이어 친지 소개로 만난 아가씨와 짧은 열애 끝에 약혼까지 성공. 그러나 기쁨은 짧았다.
12월말, 새해 출근준비에 들떠있던 이씨에게 S보험사로부터 ‘회사사정이 좋지 않아 발령을 유보한다’는 내용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했던가.
처음에는 “조금 더 기다려보자”던 약혼녀도 결국 지난달초 집안의 반대로 결혼하기 힘들다며 잊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IMF가 나를 사회에서 낙오자로 만들고 게다가 약혼녀까지 앗아갈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씨의 신세한탄에는 깊은 좌절과 허무가 배어 있었다.
〈선대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