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선진8개국(G8)정상회담 개최국인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회담에 들어가기 전 “종전의 G8정상회담은 ‘말의 전시장’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국제적 현안을 쓸어담아 공동선언문에 열거하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은 내놓지 못해온 것을 꼬집은 것.
그는 올해 중요도가 떨어지는 문제는 미리 열린 외무장관 및 재무장관 회담에서 거르도록 하고 정상회담에서는 주요 현안을 깊이있게 논의하려고 시도했다.
때마침 인도네시아사태와 인도의 핵실험 등 메가톤급 사건이 터져 블레어의 시도 자체는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마다 50여쪽에 이르던 공동선언문도 올해는 10여쪽으로 줄었다. 그러나 회담의 내용과 성과는 여전히 ‘글쎄올시다’라는 것이 G8회원국들의 솔직한 자평이다.
인도네시아 사태의 경우 폭동 방화 약탈이 나흘간이나 진행돼 수백명이 사망한 뒤에야 G8정상들은 개혁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타이밍도 늦었을 뿐 아니라 ‘손목 비틀기’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G8 고위관리들은 또 인도의 핵실험에 대해서는 사실상 무력감마저 느낀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을 상원이 거부해 미국에서조차 아직 인준이 안된 마당에 공동 경제제재에 반대하는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을 설득할 명분이 없다는 것. 회원국들의 입장차는 제삼세계 부채탕감 문제에서도 나타났다. 개별국가가 알아서 하자며 일괄 탕감에 반대한 독일의 입장에 따라 대책은 ‘립 서비스’수준에 그쳤다.
5만여명의 시위자들이 16일 회담장 주변에서 인간 사슬을 만들어 탕감을 요청했으나 메아리는 없었다. 중동평화 코소보사태 등에 대한 언급도 원론에 그쳤다. 그나마 첨단기술을 이용한 국제조직범죄에 대한 대책만은 96년 리옹회담 이후 공조체제가 굳혀지는 양상이어서 유일한 성과로 꼽을 만하다.
〈버밍엄〓김상영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