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미국 샌타바버라 소재 캘리포니아대(UCSB) 교육심리학과 교수로 임용된 홍세희(洪世憙·34)씨는 투명한 미국식 공개채용과정을 직접 체험했다. 미국 대학강단은 외국인인 그에게도 활짝 열려 있었다. 돈을 달라거나 연줄을 따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정보원은 인터넷의‘크로니클’사이트(chronicle.merit.edu/.ads/.links.html)와 학술전문지. 어떤 강의를 맡기고 어떤 대우를 해줄 교수를 어떤 방식으로 뽑는다는 대학별 정보가 가득하다.
“작년 11월부터 몇몇 대학에 연구계획서 추천서 논문 등을 보냈죠. 한국처럼 성적, 졸업증명서는 요구하지도 않아요. UCSB에서 ‘서류심사 결과 유력후보 10명에 포함됐다’는 E 메일이 왔어요. 2월초 교수들과 40분간 전화인터뷰를 가진 뒤 2박3일 일정으로 대학을 방문해 면접 등을 치르게 됐습니다. 최종후보 3명은 각자 편한 날짜를 선택합니다.”
3월초에 대학을 방문했다. 학장은 학교예산과 학교랭킹을 자랑하면서 연봉을 비롯한 채용조건과 대우를 소개했다. 학장은 교수지망자를 동등한 계약상대자로 대했다.
빡빡한 평가일정이 이어졌다. 교수 선발의 핵심기준은 후보자의 연구능력과 연구계획. 하루는 논문발표, 교수들과의 토론. 다음날은 교수들과 대학원생 대표의 공식인터뷰와 이들 앞에서의 시범강의. 식사때마다 교수 3명이 교대로 나와서 관심있는 연구분야를 탐색했다. 인간 됨됨이도 살피는 듯했다.
“열흘 뒤 학장은 전화로 ‘좋은 소식’을 전했어요. 탈락자들에게는 ‘이러저러한 기준으로 (당신보다) 더 적합한 사람을 뽑았다’는 편지를 보냈답니다. 어느 대학이든 원서접수에서 최종선발까지 중간결과를 수시로 알려주는 것이 고마웠어요.”
후보를 종합평가,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미국식 교수임용제도다. 눈을 돌려 한국을 보자. 겉보기엔 큰 흠이 없는 심사기준들. 그러나 특정후보를 밀기로 작정한 재단이나 교수 앞에서 이 기준은 힘을 잃고 ‘밀실임용’이 판친다.
C대학 교수임용 심사기준은 경력 연구실적 등 학과심사가 4백점, 총장 부총장 등의 면접점수도 4백점. 이 대학이 철학교수를 뽑는데 학과심사에서 47점 차이가 난 1등과 꼴찌(3등)의 순위가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면접점수에서 무려 50점 차이가 난 때문.
S교대에서는 미술교육이론 전공교수를 뽑으면서 특정후보에게 유리하도록 ‘공예실기 가능자’라는 자격기준을 추가해 말썽이 났다. H대 중국어학과는 전공도 일치하지 않고 박사학위도 없는 후보가 박사학위자들을 제치고 교수가 됐다.
교수 임용 불공정 사례 등을 접수하는 ‘교수 공정임용을 위한 모임(교공임)’에 최근 3년간 신고된 사례는 2백여건.
교수임용을 제 손에서 떡주무르듯 하기로는 재단측이 가장 심하다. 교공임의 96년 설문조사에서 전국 대학교수 2백55명은 ‘불공정의 원흉’으로 재단(26%)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학과(20%) 총장(13%) 고참원로교수(12%)순이었다. 교공임 장정현(張正鉉)간사가 소개하는 어처구니없는 사례.
“재단이 특정후보를 미는 경우 연구실적 점수가 훨씬 높은 후보가 면접을 못 치르는 일도 많아요. 그 후보가 도저히 안될 것 같으면 교수임용계획 자체를 철회하는 대학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선 심사과정을 국제표준에 맞추고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죄의식조차 없이 이뤄지는 ‘자기사람 심기’나 본교출신자를 우선 채용하는 ‘동종교배(同種交配)’는 대학역사 만큼이나 뿌리깊은 병폐. 학맥과는 무관한 파벌 싸움에 상아탑이 멍들었다. 어떤 교수는 특정 제자에게 자리를 주기 위해 다른 제자들에게 2년 동안 교수직 지원을 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기도 했다.
미국 대학들은 본교출신자를 교수로 임용하지 않는 것이 대원칙. 본교출신 비율은 대개 5%, 많아야 10%다. 국내 몇몇 대학의 경우 50%을 넘는 것과 대조적. 독일도 일단 다른 대학에 교수로 임명되어 이름을 날린 후에야 모교로 초빙될 수 있다.
국내에서도 대학별로 본교출신 임용비율을 제한하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교육부가 곧 내놓겠다는 ‘교수임용제도 개선대책’에도 본교출신임용을 제한하거나 외부전문가를 심사위원에 참여하게 하는 내용이 들어간다.
한국의 교수 대부분은 선진국의 투명한 교수 임용절차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또 상당수는 처음 임용될 때 비합리적인 평가방식 때문에 치를 떨었던 경험을 갖고 있다. 이들이 책임있는 자리에 오르면 제대로 된 교수 임용제도가 도입될만 한데 왜 문제는 계속되는 것일까. 경희대 강희원(姜熙遠·법학과)교수는 말한다.
“한마디로 말해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것과 똑같아요. 몰라서 안고치는 게 아니라 결단능력이 부족한 겁니다. 자신이 평가 대상일 때는 부조리가 많은 임용절차를 고쳐야 한다고들 말하지요. 세월이 흘러 남을 평가하는 입장이 되면 기득권 지키기로 나오지 뭡니까.”
〈윤경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