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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윤상호/「벼랑끝」어느 영업사원

입력 | 1998-05-20 19:27:00


D자동차 대방영업소 영업사원 이모씨(47·서울 구로동)는 요즘 ‘벼랑끝에 몰린’ 자신의 처지를 생각할수록 한숨만 나온다.

23년간의 월급쟁이 생활 끝에 지난해 재벌기업 계열사 과장으로 승진한 이씨는 IMF쇼크로 몰아닥친 구조조정의 ‘칼바람’에 2개월 전 자진사표를 써야 했다. 이씨는 “승진했을 때 나보다 더 기뻐하던 가족들의 모습이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고 털어놓았다.

회사에서 내놓은 ‘생계대책’은 계열사 산하 자동차 영업소 6개월 계약직.

그나마 실적이 나쁘면 언제라도 자르겠다는 엄포에 속이 까맣게 탈 지경이다.

“주위의 동료들이 하나둘 포기할 때마다 맥이 빠졌지만 이를 악물고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나 20여년간 책상에만 앉아있었던 이씨에게 영업현장은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다.

요즘같은 불황에 차 한대 팔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전직장의 거래처나 동창생들을 찾아다니고 휴일에는 결혼식장을 쫓아다니느라 녹초가 되지만 허탕치기 일쑤다. 이씨는 얼마 전 30대 주부에게 처음으로 차 한대를 팔면서 “이렇게 나이든 영업사원은 처음본다”는 말을 듣고 밤새 잠을 못이뤘다. 차 한대를 팔 경우 이씨에게 떨어지는 수당은 4만원 안팎. 계열사 직원에게 판매하면 그나마 절반으로 줄어든다.

이씨는 “얼마 전 백화점 판매원으로 일하던 아내마저 해고당한 터라 힘들지만 오로지 자식들을 생각해 버틴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퇴직금으로 받은 6천여만원 가운데 대출금 2천만원을 갚고 회사의 강매에 울며 겨자먹기로 새차까지 구입해 남은 돈은 2천만원 남짓.

“뚜렷한 대책도 없고 어차피 막다른 곳까지 왔는데 하는 데까지 한번 해보자는 생각뿐”이라며 힘없이 미소짓는 이씨의 어깨가 천근만근 무거워보였다.

〈윤상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