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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話 문민정부53]각계의 「시국수습 解法」

입력 | 1998-05-20 19:27:00


97년 4월, 김영삼(金泳三)정권은 ‘현철(賢哲)씨 사법처리’라는 칼날 위에 서서 ‘잔인한 4월’을 맞고 있었다.

한보사건이라는 메가톤급 태풍을 맞고도 여권, 특히 청와대는 ‘김현철 사법처리’여론을 완강히 거부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김대통령 자신이 현철씨의 한보 관련 무혐의를 ‘확신’하고 사법처리를 요구하는 여론을 일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대통령과 ‘깊은 교감(交感)’을 갖고 있던 김기수(金起秀)검찰총장도 당시 사석(私席)에서 “한보사건과는 별건(別件)으로 현철씨를 구속하는 것은 반대한다. 그것은 표적수사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현철씨 사건 수사검사와 일선 검사들은 공공연히 반발하고 있었다.

“수사를 하다가 비리가 나오면 당연히 처벌하는 것이다. 범죄가 있는 곳에 검사가 있고 처벌이 있다. 한보관련 비리가 있으면 처벌하고, 없으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런 상황에서 김총장이 ‘표적수사 불가’를 주장한 것은 바로 김대통령의 의중을 대변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4월 중순을 넘기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한보사건은 야당과 언론의 현철씨 사법처리 요구를 넘어 김대통령의 92년 대선자금 내용도 수사해야 한다는 이른바 ‘몸통론(論)’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두달 전 한보특혜대출비리사건으로 검찰에 소환된 홍인길(洪仁吉) 황병태(黃秉泰)의원과 김우석(金佑錫)내무장관 등 민주계 실세들은 물론 ‘소통령’으로 불리던 현철씨까지 모두 ‘깃털’에 불과하고 한보사건의 ‘몸통’은 바로 김대통령의 92년 대선자금이라는 압력이었다.

정국은 걷잡을 수 없이 얽히고 설킨 채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래도 부정(父情)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을까. 김대통령은 난국수습을 위해 신현확(申鉉碻) 남덕우(南悳祐)전총리 등 각계 원로급 인사들을 만나 해법을 구하면서도 ‘둘째 아들’의 사법처리에는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민주계 중진은 물론이고 누구도 김대통령 앞에서 ‘현철씨 사법처리’를 직언할 수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당시 동아일보 발행인인 김병관(金炳琯)회장이 초청을 받고 청와대를 방문, 김대통령과 나눈 대화는 그런 정황을 분명히 보여준다.

4월16일 낮 청와대에서 단둘이 마주앉은 김대통령과 김회장. 식사는 곰탕 한 그릇이었다. 김대통령은 묵묵히 식사만 했다.

▼ YS, 구속여론에 거부감▼

김회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김회장〓대통령, 술 한잔 주십시오.

김대통령〓대낮에 술은 무슨 술이오.

김회장〓술 한잔 하고서 시국해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붉은 포도주가 나왔다. 김회장은 포도주 한 잔을 단숨에 마신 다음 말을 꺼냈다.

김회장〓화내지 말고 제 얘기를 들으십시오. 현철씨를 사법처리해야 합니다.

김대통령〓그동안 검찰에 지시해 한보사건을 수사하면서 샅샅이 뒤져봤지만 현철이가 관련된 사실은 없다는 거예요. 본인도 깨끗하다고 말하고 있어요.

김회장〓국민이 믿겠습니까.

김대통령〓그게 문제지요.

김대통령은 깊은 침묵에 빠졌고, 김회장은 포도주 한 병을 혼자 비웠다. 김회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김회장〓25일에 청문회가 열리면 현철씨가 해명을 하겠지만 그래도 국민적 의혹은 해소되지 않을 겁니다. 또 현철씨가 검찰조사를 받고도 그대로 풀려나면 여론은 면죄부만 주었다고 할 겁니다. 그러니 검찰의 수사의지를 꺾지 마시고 소신껏 수사하게 하십시오.검찰이 일단 소환하면 사법처리를 하지않을 수 없을 겁니다.

김대통령〓글쎄, 검찰에 내사를 시켰는데 한보관련은 없다는 겁니다.

김회장〓국민이 납득하지 않을 겁니다. 한보관련이 안드러나면 별건으로라도 사법처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대통령도 살고 나라도 살리는 길입니다.

김대통령〓….

김회장〓시국과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검찰이 사법처리한 뒤 대통령께서 대국민 사과성명을 다시 한번 발표하는 겁니다. 그 사과성명에서 92년 대선자금의 진상을 밝히고, 앞으로는 이런 부조리가 없도록 정치개혁을 철저히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셔야 국민이 납득할 겁니다. 과거 정치권이 재벌들의 돈을 받아온 관행을 인정하고, 앞으로는 돈 안받고 안쓰는 선거를 하도록 제도를 고치겠다고 진솔하게 고백하는 겁니다.

김대통령〓대선자금 얘기는 지난번 성명 때도 언급했어요.

김회장〓그 때는 그저 형식적인 언급에 그쳤지요. 이번에는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김대통령은 입을 굳게 다문 특유의 표정으로 뚫어지게 앞만 응시했다.

이날 김회장은 김대통령에게 세가지의 시국해법을 제시했다. 첫째, 현철씨의 사법처리, 둘째, 대국민사과성명발표, 셋째, 사과성명에 92년 대선자금의 내용을 밝히고 이같은 천문학적인 숫자의 대선자금 동원을 차단할 정치개혁을 실현하겠다고 약속할 것 등이었다.

하지만 김대통령은 반응은 냉담했다. 우선 현철씨의 사법처리 문제에 대해서는 끝까지 외면하다시피 하며 거부감을 나타냈다. 검찰에 내사를 시켰지만 한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는 주장으로 일관했다. 김수한(金守漢)국회의장을 비롯해 한보관련 여야 정치인들을 연일 소환해 조사하는 마당에 현철씨라고 해서 ‘성역’을 두겠느냐는 것이 김대통령의 논리였다.

아닌게 아니라 당시 김윤환(金潤煥) 김덕룡(金德龍) 서석재(徐錫宰)의원 등 여권 실세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자 여권에서는 “몸통 하나 살리려다 깃털들만 죽어난다”는 불만의 소리가 터져나왔다.

김대통령이 현철씨의 사법처리를 피해보려고 필사적인 시도를 계속하고 있었지만 사태는 날이 갈수록 악화할 뿐이었다.

검찰수사는 집요했다. 결국 92년 대선자금 중 남은 1백20억원이 현철씨의 측근인 ㈜심우 대표 박태중(朴泰重)씨 계좌로 유입된 것을 확인했고, 문제의 돈이 다시 대호건설 사장 이성호(李晟豪)씨에게 흘러 들어갔다는 확증이 나오자 김대통령도 현철씨 사법처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대검 중수부 수사 관계자의 증언.

“현철씨가 구속된 뒤 김대통령은 극도의 허탈감에 사로잡혔다고 들었습니다. 믿었던 아들에 대한 배신감과 자신이 고집스럽게 지켜온 원칙이 훼손됐기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김대통령은 현철씨 스스로 ‘절대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한 말을 100% 믿었는데 이 믿음이 깨졌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자신이 고집스럽게 지켜온 ‘한 푼도 안받겠다’는 원칙마저 훼손됐다며 몹시 허탈해했다는 겁니다.”

김회장과 비슷한 시기에 김대통령을 독대한 신상우(辛相佑 현 한나라당 부총재)해양수산부장관의 기억도 비슷하다.

“김대통령은 넋이 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대선 때까지 남은 6개월 동안 내각제 총리를 한다고 생각하고 힘을 내시라는 위로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 후 유엔을 방문했을 때 ‘내각제 하에서는 2개월만에 물러나는 총리도 있다’며 의지를 다졌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김대통령의 심리상태만 그런게 아니었다. 여권 전체가 급박한 위기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현철이냐 정권이냐’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었다.

▼「현철이냐 정권이냐」기로에 ▼

김기수전검찰총장의 회고.

“당시 검찰 수뇌부와 여권 핵심은 한보 1차 수사에 대한 비난여론이 거센 상황에서 현철씨를 구속하지 않을 경우 4·19 때와 같이 서울대교수들이 데모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 그런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정권이 무너지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정권을 선택하느냐, 현철씨를 선택하느냐의 기로에서 결국 현철씨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대통령도 이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현철씨는 내가 (검찰총장으로서) 자신의 구속을 몸으로 막아주지 못한 것에 대해 서운하게 생각했겠지만 내가 몸을 던져 막았어도 도도한 흐름은 막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김총장은 대통령의 뜻을 헤아렸는지 현철씨의 구속을 상당히 부담스러워 했다. 김총장은 4월28일 동아일보와 특별인터뷰를 가진 자리에서 “한보사건 수사결과 현철씨의 비리혐의가 드러나지 않으면 수사를 마무리한 뒤 책임을 지고 물러날 생각이다. 현철씨를 한보사건과 무관한 별도의 개인비리를 걸어 구속하는 것은 검찰이 원칙적으로 피해야 할 ‘표적수사’에 해당하기 때문에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도의적 책임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검찰이 현철씨를 사법처리하기 위한 자료확보와 방증수집에 성공한 때였다.

요동치던 정국은 5월17일 현철씨의 ‘별건 구속’으로 고비를 넘겼다.

5월30일 김대통령은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중대결심’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정치개혁을 강조했지만 대선자금 문제에 대해서는 “자료가 없다”며 포괄적으로 언급하고 넘어가는 인색함을 보였다.

〈김창혁·이수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