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국민각성일’인 20일 자카르타 국회의사당에는 수만명의 대학생이 시위를 위해 모였으나 군경의 봉쇄로 거리로 나서지 못해 유혈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일부 지방에서 학생과 시민의 시위가 벌어졌으나 역시 큰 충돌은 없었다.
그러나 수하르토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의사당에 머물고 있는 학생들과 군경이 언제 충돌할지 알 수 없어 이날 자카르타에는 하루종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국회의사당에서 사흘째 농성중인 학생들은 20일 의사당 본회의장 내부까지 진입, 문서를 창밖으로 내던지고 불을 지르는 등 소동. 군경의 진압은 없었으나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도는 가운데 학생 1만2천여명은 구내 곳곳에 돗자리 등을 깔고 이날밤 철야.
○…자카르타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국회의사당은 20일 학생들의 ‘해방구’로 변모.
정문에서 의사당 본관까지 3만평의 구내는 전날부터 전국에서 모여든 2만여명의 학생들로 꽉찬채 열기가 대단. 학생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시위구호와 노래가 야자수와 시원스런 분수로 정비돼 있는 의사당 경내를 뒤덮을 지경.
노랑(인도네시아대) 파랑(트리삭티대) 빨강(반둥과학기술대) 등 다양한 색깔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매스게임을 보는 듯한 ‘장관’을 연출.
○…학생들의 지휘조직인 ‘자카르타 학생운동 포럼’은 현장에서 쉴새없이 전략을 마련해 학생들에게 전달.
국회의사당 주변에는 적십자의 텐트가 쳐지고 앰뷸런스가 대기중인 가운데 의료진이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유혈사태에 대비.
의사당 지붕에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많은 학생들이 올라가 인도네시아 국기를 흔들며 구호와 노래를 계속.
○…학생들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수하르토의 허수아비를 들고 다니며 “즉각 교수형에 처하라”는 구호를 계속.
이날 오전 시위자제를 촉구했던 이슬람교 지도자 아미엔 라이스가 정오 무렵 현장에 도착하자 학생들은 일제히 박수와 함성으로 환영. 일부 학생들이 시위자제 요구에 대해 항의했지만 박수소리에 이내 묻히기도.
○…이날 자카르타 시내에는 약 15만명의 병력이 배치돼 시내 곳곳에 진지를 구축, 만약의 사태에 대비.
대부분의 도심 사무실은 문을 닫았으며 시민들이 집에 머무르고 있어 시내 교통은 매우 한산한 모습. 군경의 교통통제에 따라 시내 호텔의 결혼피로연 등 각종 행사도 취소사태.
○…2개의 저명한 스위스 비정부기구(NGO)는 이날 “수하르토대통령의 재산중 일부가 스위스에 은닉돼 있다”며 수하르토의 모든 재산을 ‘동결’할 것을 자국 정부에 촉구.
바젤에 본부를 둔 이들 단체는 “4백억달러로 추정되는 수하르토 일가의 재산중 일부가 스위스은행에 예치돼 있는지에 관해 스위스연방은행위원회가 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주장.
○…자카르타 북부 탕그랑 등을 중심으로 지난 주 발생한 폭동때 약탈한 냉장고 TV 휴대전화 등이 쏟아져 나오면서 장물시장이 곳곳에서 성시.
〈자카르타〓김승련특파원·외신종합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