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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원윤수/「日皇호칭」사용은 안될 말

입력 | 1998-05-21 19:26:00


몇해전 프랑스의 철학자 레지스 드브레가 대학교수 몇명과 함께 학술회의차 서울에 왔을 때 저녁을 같이 한 적이 있다. 한국에 오기 전 일본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온 터였다.

자연스레 한일간의 문제로 화제가 옮겨졌다. 그들은 일본문화의 특징, 경제적인 번영에 대해 나름대로 의견들을 개진하였다. 그리고 한일관계에 대해 무슨 이해관계로 나라 사이가 원만하게 풀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두 나라의 문제는 ‘마음’의 관계 때문이라고 대답했는데, 그 말을 프랑스어로 ‘암므’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이 단어는 영혼 혼 마음 정 생명 사람 등의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내 표현속에 그 모든 뜻이 담겨 있음을 강조하고 오늘날 프랑스와 독일의 사이를 이해관계로만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어 그들을 약간 당황케 한 일이 생각난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다투고 싸워온 프랑스와 독일은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의 관계에 있다고 할수 있다. 특히 2차대전 이후에는 극에 달했었다. 그러나 패전과 분단의 폐허에서 일어난 독일이 프랑스와 갖는 선린관계에서 우리와 일본과의 관계를 비교할 여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최근 유럽통일을 위해 안정된 마르크를 버리고 ‘유러’라는 단일통화를 받아들이는데 발휘한 유럽중앙은행장 임기문제에서 프랑스에 대해 독일이 한 양보는 양국관계의 대표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성과 이름까지 빼앗고 말까지 없애려했던 36년의 학정에 대해 마음속으로 일본은 사죄한 적이 있는지. 정신대로 혹은 징용으로 끌려가 짓밟히고 죽은 무수한 젊은이들에 대한 일본의 태도, 한국전쟁을 가상한 기묘한 군대파견계획, 교활한 변명으로 일관하는 무역역조, 풀릴 길 없는 교포문제, 그리고 국토분단의 원인….

나는 ‘황국신민의 맹세’를 외던 과거를 잊고 싶다. 그런데 요즈음 신문지상에 ‘천황’이라는 어휘가 자주 나와 치가 떨리는 끔찍한 과거를 환기시켜 주고 있다. 그 밑에 폐하라는 말까지 붙이자고 할까 겁도 난다. 왜 진중하지 못할까, 무엇 때문에 그리 급한지 납득이 안 간다.

원윤수(서울대교수·불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