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에 가보면 마치 병원에 와있는 느낌을 받는다. 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녹이 잔뜩 엉겨붙어 있는 철검이 ‘입원’하면 의사에 해당하는 연구원은 우선 X선 촬영으로 녹 속의 유물 모습을 확인한다. 철검에 은이나 금으로 상감한 무늬가 있을 경우도 X선으로 확인돼 녹을 제거할 때 무늬를 손상시키지 않고 복원하게 됨은 물론이다.
▼문화재에 대한 보존과학차원의 ‘시술’이 처음 행해진 게 69년이므로 내년이면 30년이 된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도 문화관광부의 박물관 등에 대한 문화재 수장실태 점검 결과 일부 금속 유물이 녹슬고 원형을 잃고 있다는 보도다. 특히 5개 지방박물관에 수장돼 있는 3만5천여 금속유물이 보존처리 미흡으로 원형훼손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가장 큰 원인은 보존대책도 없이 발굴만 해댔기 때문이다. 지난 30여년 ‘개발의 연대’에 도로 아파트 공장을 짓느라 불가피하게 유적에 손대는 이른바 ‘구제(救濟)발굴’이 전국 도처에서 행해졌다. 그렇다고 해도 가장 안전하게 보관돼야 할 박물관 수장고에서 유물이 녹슨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문화재는 한번 훼손되면 가치를 상실하므로 발굴에 앞서 보존처리 대책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고고학의 금언 중 ‘발굴은 유적의 원상을 영원히 없애버리는 행위’라는 말이 있다. 발굴행위의 결과 가장 핵심이 되는 유물이 원형대로 보존될 수 없다면 발굴을 하지 말고 지하에 두는 것이 최상의 보존방법이다. 금관만 중요 유물이라며 잘 보존하고 다른 유물은 녹슬게 놔둔다면 값진 유물만 챙기는 도굴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정부는 유물의 보존과학처리를 위해 인원 예산 장비부터 획기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임연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