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女心)을 잡아라.’
태평양화학 브랜드매니저(BM)팀의 목표이자 화두다. 새 상품의 기획부터 개발 생산량 가격은 물론 인기없는 제품의 생산중단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팀에서 결정한다. 과거 별도로 움직였던 상품개발 미용연구 마케팅 기능을 한 곳에 합쳐 만든 이 팀은 현재 20대중반 여성을 겨냥한 ‘라네즈’라는 상표의 기초화장품과 메이크업 등 30여종을 집중 관리하고 있다.
“올해는 회색이 유행이라는데 아직은 회색옷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이화여대 앞 상인들의 말로는 세안(洗顔)화장품 판매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답니다.”
수시 회의. 팀원 6명이 대학로 명동 이화여대앞을 발로 뛰며 수집한 현장정보를 놓고 토론을 벌인다. 패션쇼나 극장은 빠르게 변하는 소비자의 마음을 잡고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주요 헌팅장소. 권기선대리(28·여)는 “영화나 패션쇼에서 나온 옷이 유행할 경우 화장품 색깔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 외국잡지도 중요한 아이디어의 원천.
이같은 아이디어가 모여 탄생한 게 얼음 타입 화장품. ‘여름에 냉장고에 화장품을 넣고 쓰는 주부를 보고 화장품 자체를 차게 할 수 없을까’하는 아이디어가 시작이었다. 연구소에 가능성을 타진, OK사인이 나간 뒤 광고기획과 용기 디자인을 동시 진행했다. 이어 시제품을 여성모니터단에 넘겼다. “향이 너무 강한 것 같아요.” “색깔이 별로예요.” 이런 의견들은 즉각 반영됐다.
남자직원도 화장품을 써본다. 이전 제품과 피부에 닿는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색깔은 괜찮은지…. 에피소드 하나. 한 직원이 매니큐어 지우는 것을 잊고 퇴근하다가 지하철에서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나서야 얼굴이 벌개진 경우도 있었다.
‘작명’도 사람 이름 못지않게 중요한 작업. 한 화장품을 ‘싱클레어’로 명명하려다 영화속 악당 이름과 같다는 직원의 제보로 탈락한 적도 있다.
매달 상품별로 실적을 분석하고 대리점 판촉이나 마케팅 활동을 챙기는 것도 이들의 몫. 나인석팀장은 “IMF여파에도 판매가 느는 상품이 있어 역시 좋은 아이디어 상품은 불황과 상관없음을 보여준다”고 자랑.
〈윤양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