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최원식씨(49·인하대교수)의 ‘팔봉비평문학상’ 사양은 근래 문단에서 보기 드문 ‘사건’이었다. 권위있는 상을 거절한 것도 뜻밖의 일이었지만 그의 고사가 받아들여지는 과정은 더욱 신선한 충격이었다.
최씨의 평론집 ‘생산적 대화를 위하여’(창작과 비평사)가 제9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작으로 발표된 것은 13일. 그러나 최씨는 이날 주관사인 한국일보 지면에 수상소감 대신 고사(固辭)의 변을 실었다.
최씨가 수상을 사양한 이유는 팔봉 김기진의 일제말 친일행적 때문. 그러나 그가 단순히 팔봉의 도덕적인 실책을 문제삼은 것은 아니다.
“친일문학이 본격적 탐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연구자로서… 약간은 비켜난 자리에 저를 두는 것이 한국근대비평의 개척자 팔봉선생의 유업을 계승하는 일일 것”이라는 게 그의 고사 이유였다.
한국 근대비평의 개척자이면서도 그 명성 때문에 일제말의 극악한 총동원체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팔봉 김기진. 최씨는 팔봉의 처지를 십분 이해하면서도 팔봉비평상을 수상하고 나면 ‘친일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마땅히 가져야할 ‘비판적 거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고뇌를 겪었던 것이다.
그의 사양의사는 이미 수상자 발표 전에 심사위원과 주관사쪽에 전달됐다. 그러나 심사위원인 선배평론가 유종호 김윤식 김병익 김주연씨는 “우리의 임무는 마땅한 수상작을 가리는 것일 뿐 상을 받고 안받고는 수상자가 결정할 일”이라며 수상자의 의견을 존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상자로서는 유족이나 심사위원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고 상을 받는 일이 고사보다 더 쉬운 길이었을 것이다. 주는 쪽도 ‘수상작 없음’이라고 발표하거나 다른 후보작 중에서 수상작을 뽑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축제 마당을 벌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상을 받는 사람도 주는 쪽도 스스로에게 더 쉽지않은 길을 택했다.
그 어려운 선택은 거대한 ‘흥행이벤트’로 전락해가는 오늘의 문학상 수상풍토를 되돌아보게 했다. ‘품질인증’딱지처럼 ‘상 수상작품’이라는 표지를 둘러쓴 문학서적들. 그러나 그들이 ‘진짜 질좋은 문학’이라고 자신하는 문인은 별로 없다.
작품내용과는 관계없이 대중적인 인기도에 따라 올해는 누구, 내년은 누구로 수상자가 공공연히 예측되는가하면 문단 내 선후배 서열이나 학연 지연 등이 얽힌 역학관계에 따라 돌려갖기식으로 부여되는 문학상도 적지않다. 현대문학의 찬란한 이정표인 선배작가들의 이름을 붙인 상들은 넘쳐나도 그 상이 선배들의 문학적 유업까지 계승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선뜻 답하지 못한다.
상은 상다울 때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부끄럽지 않다. 그러나 상을 상답게 만드는 것도 결국 그 상의 뜻을 올곧게 지켜가려는 사람들에 달려 있다.
〈정은령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