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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권재현/보통주부의 생활고 호소

입력 | 1998-05-26 19:28:00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왜들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하죠.”

동아일보 노숙자 기사를 보고 참담한 심정을 가눌 길 없어 26일 오후 본사로 전화를 걸게 됐다는 경기 광명시 철산동의 송모주부(37).

“이렇게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참아야지 하면서도 저도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 힘들어 하소연할 곳을 찾았어요.”

지난해 12월 제약회사 영업직을 그만둔 뒤 6개월째 월급을 가져오지 않는 남편. 7백만원이 든 적금과 보험 2개를 몽땅 해약해 생활비로 써버렸다. 5백만원짜리 마이너스통장으로 버티고 있지만 그것도 잔금이 2백만원밖에 안남았다. 계약기간이 다된 2천7백만원짜리 전세를 빼려 했지만 사정을 뻔히 아는 집주인을 괴롭힐 수 없었다.

“실업수당을 신청할 수도 없고 실업대부 혜택도 받을 수 없잖아요. 남한테 손벌리기는 너무 부끄럽고 딱히 하소연할 데도 없고….”

그러면서 그가 털어놓는 사연들.

스승의 날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의 담임교사를 위해 백화점에서 고급속옷을 샀다가 학교에 찾아오지 말라는 말을 듣고 식료품으로 바꿔오면서 뛸 듯이 기뻐했던 일. 서민아파트라 1대도 안보이던 트럭야채상이 7대나 몰려와 암만 악을 써도 사러 나가는 사람이 없는 풍경. 김치거리를 사러갔다가 “요즘 사람들은 열무나 총각무만 찾아 배추는 없다”는 말을 들고 얼굴이 붉어졌던 일. 대학때 민주화세대라고 자부했던 남편마저 “내 것부터 먼저 챙기고 봐야겠다”며 이기적으로 변해갔다.

동냥하는 할머니에게 2백원을 적선해 기특하게 여겼던 아들의 일기장에서 ‘그 할머니가 요정이어서 내게 보답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보고 가슴이 무너졌다.

전화 말미에 “너무 억울해요. 세금 꼬박꼬박 내가며 정직하게 살려고 그렇게 애썼는데…”라고 한 그의 목소리가 오래도록 귓가에 맴돌았다.

〈권재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