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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공직사회 기강잡기

입력 | 1998-05-26 19:28:00


6·4지방선거가 끝나고 나면 공직사회에 한바탕 회오리가 불어닥칠지 모를 전망이다. 사정(司正)당국은 뇌물수수 등 비리나 무사안일 복지부동(伏地不動) 냉소주의 따위의 공직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악습을 척결하기 위해 광범위하게 내사를 벌이고 있다는 보도다. 청와대비서실장은 이례적으로 장악력없는 장관에 대한 개각 가능성도 시사했다. 사정 규모와 강도가 만만치 않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정부가 공직사회의 기강확립을 외치고 나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새 정권 출범후 겨우 석달밖에 안됐는데도 공직자들의 고질적인 행태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 개혁작업과 경제난 극복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는 판단인 듯하다. 정부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다. 지금은 공직자들의 솔선수범과 적극적 개혁참여가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공직자 한사람 한사람이 나라를 책임지고 있다는 투철한 사명감을 가져야 할 때다. 그런데도 공직사회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일반적 관측이다.

그런 점에서 비리 또는 반(反)개혁 공직자에 대한 형사처벌이나 인사조치는 공직사회 기강확립의 한 방법일 수 있다. 다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은 공직기강확립이라는 명분이 부를 수도 있는 부작용이다. 혹시 법만으로 기강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단견이 아닐 수 없다. 김영삼(金泳三)정권이 출범초기 비리혐의 고위공직자들을 줄줄이 구속하여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개혁이 실패로 끝난 연유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구속의 남용과 정치적 악용사례가 무사안일 복지부동 보신주의 등을 오히려 심화시킨 것이다.

법에 의한 기강확립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정치적 논리의 개입은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공직기강확립이라는 명분이 정략적으로 이용된다면 안하느니만 못하다. 일부에서는 벌써 ‘선거용’ ‘군기(軍紀)잡기’ ‘여당행 줄세우기’라며 사정예고를 사시(斜視)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발목잡기’ 측면이 없지 않겠지만 정치적으로 오해받지 않도록 신중할 필요가 있다. 공직사회와 국민이 사정결과에 공감하지 않는다면 거꾸로 정부의 도덕성과 공신력이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사정작업이 공직사회의 사기를 떨어뜨려 일하는 분위기를 악화시켜서는 안된다. 공직사회가 냉소주의 등에 빠진 근본원인이 무엇인지를 면밀히 분석하는 작업이 앞서야 사정의 실효를 거둘 수 있다. 가령 특정지역 편중인사가 일부 공직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준 것이 원인의 하나라면 기강해이가 ‘겁주기’만으로 치유되지는 않을 것이다. 겉으로는 기강이 잡힌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내부는 곪아갈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