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후 10여년 동안 한 우물만 파온 국내 중소 벤처기업이 터키에서 세계의 ‘난다긴다’는 20여개의 일류업체를 물리치고 국제입찰을 따냈다.
카드자동인식기 전문업체인 경덕전자(대표 윤학범·尹學範)는 23일 터키 정부와 앙카라 이스탄불 이즈미르 등 3대 도시 내 버스의 요금징수시스템을 ‘최첨단’ 방식으로 바꾸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액은 5백만달러, 한화로 약 70억원 규모. 금액이야 그리 많지 않지만 이번 입찰에는 독일의 지멘스를 비롯, AES프로데이터 아스콤모네텔 등 20여개 업체가 참가, 치열한 경합끝에 따냈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경덕전자의 카드시스템은 징수기에 직접 카드를 대지 않고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자동으로 요금이 계산되는 비접촉식 카드시스템으로 경쟁업체의 접촉식보다 한발 앞선 기술.
토큰과 회수권에만 익숙하던 터키 국민은 한국 중소기업 덕분에 최첨단 생활을 즐기게 된 셈이다.
경덕전자는 6월엔 러시아 무르만스크시에 자동 버스요금 징수 시스템을 공급한다.
세계 각국에서 수집되는 교통시스템과 관련된 각종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윤학범사장은 1년에 90일 이상을 해외에서 보낼 정도.
올해 49세인 윤사장은 국내 벤처 1세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삼성반도체에서 설계과장을 맡아 ‘반도체 삼성’ 신화를 창조했던 초기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다.
87년 경덕전자를 설립한 이후 윤사장은 오로지 카드판독 시스템의 ‘한 우물’만 파왔다. 전직원의 30%인 90여명이 연구인력. 기술력이 최고 강점이다. △공중전화카드 △신용카드조회기 △현금인출기 △지하철 및 버스표 등 카드를 읽어들이는 분야에선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경덕전자는 현재 국내 카드판독 시스템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 사실상 시장을 독점한 상태.
지난해 대기업을 제치고 카드 하나로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하나로 교통카드’ 시스템을 부산지역에 독점 공급하는 사업자로 선정될 때까지 국내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남보다 앞선 ‘수출 전략’ 덕분에 미국 일본은 물론 동유럽 아프리카 남미에 이르기까지 세계 30개국에 판매망이 깔려 있다. 지난해 매출액 3백30억원 가운데 55%가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 지난해 제1회 벤처기업대상과 무역협회에서 주는 1천만달러 수출탑을 수상해 이름을 날렸다.
매년 50% 이상의 고성장을 거듭한 것도, 국제통화기금(IMF) 한파에도 불구하고 밀려드는 해외 오더로 콧노래를 부르는 것도 이같은 옹고집 장인정신의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