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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새 서울대교구장 정진석대주교

입력 | 1998-05-30 20:02:00


“늘 그래온 것처럼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수환(金壽煥·76)추기경에 이어 한국 천주교의 새로운 ‘얼굴’로 떠오른 정진석(鄭鎭奭·청주교구장·67)대주교. 로마 교황청이 29일 정대주교를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한 데는 그의 후덕한 인격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회법 학자’‘최연소 주교’로 널리 알려진 정대주교는 ‘정중동(靜中動)’의 표상. 과묵 원만하고 소탈하면서도 일처리에 있어선 늘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정대주교는 193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친가 외가 모두 독실한 가톨릭 집안. 정대주교의 어머니는 ‘아들이 주교가 되는’ 태몽을 꾸었을 정도.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성당을 다니던 소년기, 광복이 되던 해, 그는 신앙적 시련에 부닥치게 된다. 마르크스 사상을 접한 것이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마르크스 유물론 사이에서의 갈등은 중학 2년생이던 15세 소년에게 너무 벅찬 것이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이듬해 사순절 특강을 들으며 ‘영혼’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가 사제의 길을 가기로 마음 먹은 것도 그 무렵. 그러나 혼자인 어머니에게 그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 1950년 서울대 공대에 입학했다. 곧바로 6·25가 났고 전란의 와중에서 그는 또다른 믿음을 얻어 전쟁이 끝난 뒤 성신대(지금의 가톨릭대)에 들어갔다. 61년 사제서품을 받고 70년엔 39세의 나이로 최연소 주교서품을 받아 청주교구장에 임명됐다.30일 오전 청주교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정대주교는 “서울대교구장직은 단순히 교회만이 아니라 사회 국가적으로 큰 짐을 짊어져야할 자리다. 그 일을 다 해낼 수 있을지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교구장으로서 시급히 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지금껏 작은 시골교구장이었고 서울을 떠난 지 이미 30년이다. 올라가서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며 “오늘의 경제위기로 답답해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청주〓정은령·이광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