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살이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7년 동안의 도피생활.’
사기혐의로 지난달 26일 서울지검에 구속돼 현재 서울구치소에서 회한의 날들을 보내고 있는 김모씨(41).
7년 전만 해도 그는 서울 용산에서 컴퓨터 부품판매업을 하던 꽤 잘나가던 사장이었다.
그러나 사업부진으로 빚에 쪼들리던 김씨는 91년 거래처에서 부품 2억원어치를 납품받아 빚을 갚고 사기와 수표부도사범으로 전락해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두 자녀와 부모를 남겨둔 채 그는 서울의 대학가 주변 하숙집에 틀어박혀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며 ‘칩거’를 시작했다.
3년쯤 후에는 용산전자상가 주변에서 컴퓨터 수리를 하며 매달 1백여만원의 돈을 벌어 가족들에게 보냈다. 그러나 그는 늘 불안감에 시달렸다.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면 하숙집을 옮겨 7년 동안 14번이나 이사를 다녔다.
김씨는 “길거리에서 경찰을 피해 다녀야 하는 고통보다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던 고통이 더 심했다”고 말했다.
그의 방황이 끝난 것은 23일. 불황으로 일거리가 없어 거리를 헤매던 김씨는 여의도 선술집에서 사소한 시비에 휘말려 경찰서에 갔다가 수배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가 구속된 날은 공소시효 7년이 끝나기 2개월 전이었다.
“잡히고 나니 도망자의 외로움과 불안이 끝났다는 생각에 오히려 시원하지만 끝내 자수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그는 “도망자의 고통을 잘 알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부도내고 몸을 피하면 늘 자수하라고 타일렀다”고 말했다.
93년부터 지난해까지 김씨처럼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내고 달아나 수배된 중소기업인은 서울지검 관내에만 모두 1만9천1백61명. 최근에는 하루에도 수백명이 돈 때문에 수배자로 전락하고 있다.
〈신석호기자〉s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