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주인공인 ‘여고괴담’은 지난달 30일 개봉 첫날 전국 78개 극장에서 2회부터 매진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알려진 배우라야 이미연과 신인 김규리 뿐. 스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영화가 이틀간 모은 관객은 서울 7만, 전국에서 18만명. 개봉 첫주 관객으로는 한국영화사상 초유의 기록이라는 주장. ‘스타의 힘’없이 ‘영화의 힘’만으로 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스타가 나와야 영화가 뜬다’. 오랫동안 한국영화를 지배해온 이 속설이 올 상반기엔 맞지 않았다. 예외는 40만명(이하 서울 관객)이 든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 15만명을 넘어선 김혜수 안재욱의 ‘찜’정도다.
올들어 5월까지 개봉된 한국영화는 13편. IMF의 여파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2편에 비해 40%가 줄어들었다.
이가운데 5월초 이승연과 김민종을 내세워 여자 소매치기와 제비족의 엇갈린 사랑을 다룬 ‘토요일 오후2시’가 2만명 미만, 4월 최민수 주연으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폭력배의 눈물나는 부성애를 그린 ‘남자이야기’도 그 정도의 관객에게 인사를 한뒤 간판을 내렸다.
안재욱―이지은의 ‘러브 러브’, 안성기의 ‘이방인’은 각각 1만명 수준. 연초 황신혜 문성근 이경영 등 호화스타를 동원한 ‘죽이는 이야기’도 4만명에 불과했다.
반면 화려한 청춘스타가 한명도 등장하지 않은 ‘조용한 가족’은 35만명을 넘어서 대조적. 미스코리아출신 권민중이 첫출연한 ‘투캅스3’는 12만 관객이 들었다. 신인으로만 영화를 만든 ‘강원도의 힘’이 칸영화제에 공식초청받은 힘을 모아 7만명을 이끈 것도 눈길을 끈다.
우리 영화계에서만 스타〓흥행보증수표의 등식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미 주간지 버라이어티의 97년 흥행결산에 따르면 할리우드에서도 스타시스템이 허물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타이타닉’을 제외한 지난해 할리우드 흥행작 ‘맨 인 블랙’ ‘잃어버린 세계’ ‘굿 윌 헌팅’ ‘빈’ ‘조지 오브 정글’은 톱스타 없는 영화였다. 영국영화 ‘풀 몬티’는 단 한명의 스타없이 만들어져 투자액의 80배나 되는 흥행수익을 올렸다.
국내 영화가에서는 ‘스타의 힘’이 이처럼 맥을 못추게 된 이유를 지나친 스타의존이 빚은 자업자득으로 풀이한다. 탄탄한 스토리와 치밀한 연출력 대신 스타에만 기대기 때문에 완성도가 떨어졌다는 얘기다.
제작비의 상당부분을 스타 개런티에 쏟아부음으로써 다른쪽에 투자할 여력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관객층은 어려지고 새로워지는데 ‘그때 그 스타’에만 매달리는 것도 스타의 효험을 떨어뜨리는 이유.
반면 스타는 없어도 신선한 아이디어와 기획력으로 승부한 영화는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란 옛말이 영화계에서도 들어맞은 셈이다.
〈김순덕기자〉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