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꼭 집에 가는 데 써야 돼.”
꽃동네 오웅진(吳雄鎭)신부가 1만원을 꺼내며 한 노숙자로부터 다짐을 받는 순간, 충남 서산이 고향이라는 50대 남자는 “글쎄, 사람 처음 믿어보나?”라며 짜증을 부렸다.
이들의 대화장면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한 ‘아주머니’의 표정이 유난히 진지해 보였다. 펑퍼짐한 회색 ‘일바지’에 때가 탄 운동화를 신은 모습이었다.
의료봉사차 들른 오신부와 어느 60대 ‘아주머니’는 2일 밤9시경 실직자들이 벅적대는 서울역 지하도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편하게 자지, 왜 배낭을 죽어라 끌어 안고 자?”(오신부)
“옆에 놓고 자면 죄다 훔쳐가요, 훔쳐가.”(노숙자)
옆에 섰던 ‘아주머니’는 죽은 듯 드러누운 남자의 이마로 손을 가져갔다.
“열이… 심해.”
쩍쩍 갈라진 남자의 발바닥을 응시하며 중얼거린 ‘아주머니’는 다시 ‘신문지이불’을 세겹으로 덮어줬다.
‘성 프란체스코의 집’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보리밥과 열무김치를 나눠주던 ‘아주머니’의 곁으로 의경들이 스쳐간 것은 밤 11시반. 3열종대가 “비켜요 비켜”하고 지나가자 지하도를 새까맣게 매운 노숙자들이 좌우로 쫙 비켜섰다. 아주머니의 입에서 탄식이 새나왔다.
“이거 너무 많다…, (노숙자가)너무 많아….”
자정이 다 돼서야 지하도를 나선 아주머니는 때마침 대합실 한편에 물을 끼얹는 청소원들을 보았다. 몸을 피했던 노숙자들은 이내 ‘물바다’가장자리에 둥그렇게 모여들어 신문지를 깔기 시작했다.
한밤중에 4시간여동안이나 서울역의 노숙현장을 ‘몰래’ 둘러본 ‘아주머니’는 김모임(金慕妊)보건복지부장관이었다. 이튿날. ‘아주머니’는 복지부 간부들에게 “노숙자를 ‘먹여 살리는’이상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이승재기자〉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