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대통령이 4일로 취임 1백일을 맞았다. 이른바 6·25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상황에서 김대통령의 1백일은 실로 험난하고 고달픈 노정(路程)이었다. 아마 스스로도 수십년 ‘숙원’을 이룬 가슴 벅찬 감회를 음미하기보다는 파산지경에 이른 나라살림 걱정에 잠못이룬 날이 더 많았을지 모른다.
때마침 취임 1백일째 되는 날 실시된 지방선거를 놓고 여야는 새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라며 치고받는 말싸움을 벌였지만 그런 의미를 부여하기엔 아무래도 너무 이른 시점이다. 5년 임기에 1백일 정도 지났다면 설혹 정책상, 또는 인사상의 시행착오가 있다 해도 얼마든지 광정(匡正)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떻든 굳이 지난 1백일을 되돌아보자면 김대통령은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대선 때의 구호가 크게 손색이 없을 만큼 남다른 역량을 보여왔다는 평가를 받을만하다. 초미의 당면과제였던 환란(換亂)과 국가파산 상황을 일단 수습했고, 민주 지도자로서의 국제적 명망 등에 힘입어 국가의 대외신인도도 위험한 수위는 넘겨놓았다.
그리고 또다른 측면에서의 핵심 국정과제인 내정개혁, 권위주의체제 타파, 대북(對北)정책 기조설정, 외교적 수완 등의 분야에서도 역대 대통령 중 보기 드물게 ‘전방위 역량’을 보여주었다. 특히 김대통령은 당선자 시절부터 해법을 찾기 어려운 난제와 맞닥뜨려서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특유의 리더십으로 ‘역시 DJ’라는 찬사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한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은 이같은 국정운영 역량이 왜 국내 정치적 안정과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사실 이 문제는 온갖 정치적 질곡을 겪은 김대통령에 의한 여야간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을 때 적지 않은 국민이 관심을 가졌었기 때문에 더욱 의아함과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공동집권에 따른 태생적 한계, 여소야대라는 구조적 한계, 여권 사람들이 말끝마다 주장하는 ‘발목잡기론’ 등은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김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이 정치적 난맥상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건 아니다. 책임정치를 지향하는 입장이라면 오히려 먼저 보아야 할 쪽은 남의 눈의 티가 아니라 내 눈의 들보다.
더구나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 나타났듯 지역할거주의 행태가 거의 고스란히 재현되는 상황은 또다른 심각한 문제다. 이대로는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국력결집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 주인(主因)으로 지적되는 인사편중에 대한 여권의 설명, 즉 긴긴 세월 계속된 특정지역 출신에 대한 불공평의 시정이요 피해 보상이라는 논리가 잘못됐다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제 아무리 구성이 완벽해도 ‘내 논리’만으로 하는 정치로는 ‘남의 역량’을 제대로 이끌어내기 어렵다. 다소 사리에 맞지 않더라도 ‘남의 논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더 나아가서는 ‘남의 정서’까지도 추스르고 아울러 사회 구석구석의 잠재적 역량을 힘껏 발현시키는 정치가 오늘 우리에게 절실한 정치다.
이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