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가 판매한 채권값이 떨어져 투자자가 손해를 봤다면 증권사는 어느 정도나 책임을 져야 할까.
2일 메릴린치 증권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 4억3천만달러를 지급키로 합의하면서 ‘복잡한 금융파생상품을 거래할 때 고객에게 투자위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사건의 발단은 오렌지카운티의 재정이 94년12월 완전 거덜나면서 부터 였다. 오렌지카운티는 그달로 파산선언을 하고 투자자문회사였던 메릴린치증권 등을 상대로 20억달러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유는 메릴린치증권이 미 연방법에 규정한 투자위험도를 사전에 설명해야 하는 의무를 이행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오렌지카운티는 총 16억달러의 카운티자산을 이자율 파생상품(지방채)에 투자했다가 투자액 전액을 날렸다. 지방채 투자는 미국내 기초자치단체들이 가장 즐겨 이용하는 잉여자산의 운용 방식. 오렌지카운티의 투자실패에 따른 파산소식이 전해지자 미 전역의 자치단체들은 자산운용방식의 대체방안을 찾느라 큰 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뉴욕 월가에선 이번 합의를 선례로 오렌지카운티가 앞으로 20여건의 유사 소송에서 2억달러 정도를 합의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메릴린치가 밝힌 합의 이유는 다르다. 지나친 소송비용과 재판결과를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
메릴린치는 이날 ‘투자결정은 전적으로 오렌지카운티측이 내렸으며 우리의 법적 책임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지만 거액을 합의금으로 주기로 한 것은 자신들도 책임을 일부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언론은 월가 금융기관이 고객을 상대로 불법행위에 대해 지불하는 합의금액 가운데 사상 두번째 규모인 이번 합의를 “증권사와 고객간의 쿠데타같은 사건”으로 평가했다.
이번 합의가 SK증권과 미국의 JP모건사간의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지 여부도 주목된다. SK증권 등 한국금융기관들은 JP모건을 통해 태국 바트화 파생상품에 투자한 후 거액의 손실이 발생하자 JP모건측이 투자위험과 투자책임한도액 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해 한국법원에 계류중이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