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정식으로 ‘이민’이란 이름을 갖고 집단적으로 바다를 건너 타국으로 간 것은 1902년 12월부터 1905년 7월까지 총 65척의 선편으로 이루어진 7천2백여명의 하와이 이민이 최초였다. 초기 하와이 이민이 막바지에 이른 1905년 3월에 다른 경로로 또 1천33명의 한국인이 멕시코라는 낯선 땅을 향해 바다를 건넜다.
2일부터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서울예술단이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애니깽’은 바로 이 멕시코 이민의 억울하고도 슬픈 삶을 내용으로 삼고 있다.
당시 이민은 국운의 쇠망과 더불어 경제적 빈곤이라는 이중고 아래서 행해졌으므로 꿈이 컸던 만큼 시련도 컸다. 특히 멕시코 이민은 종교단체가 주축이 돼 이민단이 형성됐던 하와이 이민과는 달리 영국계의 메이어즈와 일본인 이민업자 오바가니치의 사기 합작으로 이루어진 노예노동 이민이었다.
그들은 선불 1백50원과 일당 35전의 임금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전국 각처를 돌며 순박한 한국 농민들을 현혹했다. 그러나 한국 이민이 2개월의 항해 끝에 막상 유카탄 반도에 상륙하여 메리다 지방 애니깽농장에 투입되었을 때는 25전을 식대와 주거비용으로 떼이고 10전밖에 받지 못하는 비참한 생활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지상낙원으로 알고 갔던 멕시코 땅은 생지옥이나 다름 없었다. 그들은 생전 겪어보지 못했던 이질적인 열대 풍토와 땡볕 아래서 멕시코인들의 위협과 채찍을 받으며 혹사당한다. 그들의 꿈과 개척정신과 사랑은 온데간데없이 파괴되어 버렸고 오직 하루하루의 생존만이 절실한 과제로 남는다.
뮤지컬 ‘애니깽’은 그와 같은 고난 속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이 억울한 노예노동 이민의 실상을 고국에 전하고자 하는 일념에 불타는 두 인물의 행적을 좇는다. 그러나 25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서야 돌아온 고국은 이미 임금도 나라도 다 없어진 일제치하가 되어 버렸고 자신들은 조선인 아닌 멕시코인으로서 불법입국자라는 죄수의 몸으로 전락하고 만다.
극작가 김상열은 뮤지컬 ‘애니깽’에 열강에 시달리는 한말 풍운을 상징적으로 삽입함으로써 멕시코 이민의 삶을 단순히 개인사에서 민족의 수난사로 승화시켰다. 대형무대 위에서 서울예술단원들이 부르는 ‘진혼가’ ‘출국심사’ 등의 코러스가 장중하고,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송용태 박철호 유희성 이정화 등을 비롯한 주요 배역진의 독창이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 때때로 대사 사이에 끼어드는 격정적인 안무는 2시간이 넘는 공연 동안 생기를 불어넣는 기능을 한다.
좌석을 꽉 메운 관람객들은 공연이 끝났을 때, 매료당해 꼼짝도 않고 오랫동안 박수를 보냄으로써 뮤지컬 ‘애니깽’에 찬사를 표했다.
김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