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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話 문민정부58/軍개혁 실상]「100계획」이란?

입력 | 1998-06-07 20:14:00


‘100계획’에 대해 아는 군내 인사들은 극소수다. 극비리에 추진되기도 했지만 참여 인사 대부분이 문민군부 실세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100계획은 92년 대선에서 민자당 김영삼(金泳三·YS)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일부 전현직 군장성들이 극비리에 추진한 작전명.

87년 대선을 치르면서 김현철(金賢哲)씨는 군심(軍心)을 잡지않고는 대선 승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92년 3월 실시된 14대 총선은 YS진영에 암운을 던졌다. 이지문(李智文)중위에 의해 군부재자 투표부정이 폭로되면서 군부의 노골적인 여당후보 지지가 불가능해진 것.

군 정보소식통의 증언.

“100계획은 여권성향의 군인 50만명을 확보해 이들이 한사람씩만 지지자를 모으면 1백만표를 확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의미로 붙여졌습니다. 참여인사들은 야당후보의 ‘색깔론’ 등 부정적 이미지를 확대 유포하고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등 군부내 YS 대통령만들기 작업을 주도했습니다.

지연 학연 근무인연 등으로 뭉쳐진 이들 중 일부 핵심인사들은 현철씨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군내 동향을 보고하고 대응전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100계획 멤버는 부산 경남 출신이 주류를 이뤘다. 현철씨의 경복고 동문과 일부 하나회 및 호남 출신도 끼여 있었다.

경남고 출신으로는 이병태(李炳台)전국방부장관 K예비역소장 J예비역준장이 대표적이었다. 하나회 출신으로는 K중장과 P소장이 핵심이었고 정보기관에 있던 TK(대구 경북)출신 U예비역소장도 들어 있었다.

문민정부 출범 후 일부 예비역장성은 정부기관의 요직에 기용되었고 현역장성은 군사령관 또는 군단장까지 진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