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회사인지 카드남용(濫用)회사인지 모르겠더군요.”
30대 후반의 청각장애인 최모씨와 L신용카드사간의 민사재판을 지켜본 법원 관계자의 말이다.
L카드사는 지난해 “카드대금과 연체이자 4백2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최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L신용카드를 사용한 적이 없는 최씨는 황당할 뿐이었다. 최씨는 부인이 94년 자신의 이름으로 몰래 카드를 발급받은 걸 뒤늦게 알았다.
그는 법정에서 “아내의 과소비 때문에 95년 이혼했다”며 “카드사가 정확한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고 신용카드를 남발한 만큼 나에겐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지법 민사항소1부(재판장 박준수·朴峻秀부장판사)는 최근 이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려 최씨의 손을 들어 주었다.
재판부는 “원고측은 카드신청서를 증거로 제출하며 ‘최씨에게 전화를 걸어 가입여부를 확인한 뒤 부인에게 카드를 발급했다’고 주장하는데 청각장애인인 최씨에게 전화로 확인했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밝혔다.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과 어떻게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었느냐는 것.
결정적인 ‘신용’을 잃자 L카드사의 다른 주장도 먹혀들지 않았다.
L카드측은 “최씨가 도장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인이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최씨는 그 책임이라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원고측의 손해와 최씨의 도장 관리 잘못은 무관하다”며 “카드발급 실적 올리기에 급급해 최소한의 확인절차도 밟지 않은 카드사의 잘못”이라고 밝혔다.
재판부 관계자는 “신용카드사가 단순한 카드가 아니라 ‘진정한 신용’을 고객에게 발부한다고 생각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