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말 경기 안산 시화지구에서 분양된 A아파트 32평형을 분양받은 김모씨(37)는 입주를 한달 앞둔 올해 2월 위약금 10%를 물고 아파트 분양계약을 해지해달라고 시공사에 요청했다.
실직을 당해 은행 대출금 이자와 아파트 잔금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공사는 국제통화기금(IMF)이후 해약 신청자가 급증해 새로운 계약자가 나타날 때까지 분양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김씨에게 통보했다. 김씨는 결국 해약을 못하고 살지도 않는 아파트의 관리비를 꼬박 꼬박 물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호소를 해도 법적으로 시공사에 잘못이 없다고 하더군요. 생활비마저 모자라는 상황에서 막막하기만 합니다.”
대형 주택건설업체 B사의 최 이사는 요즘 급증하는 아파트해약 신청자 처리에 골머리를 앓는다.
“올들어 접수된 계약 해지 신청건이 신규 계약물량보다 많습니다. 버티는 작전으로 나가 절반 가량만 해약해줬는데도 해약물량이 지난 한달에만 수십억원 어치에 이릅니다.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부도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
중견 건설업체 C사의 김모 과장은 매일매일 해약 신청자의 협박성 전화나 편지에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 해약을 해주지 않으면 소송을 내겠다는 내용증명의 편지를 하루에 한통 이상 받는다.
“대부분 실직을 했거나 소득이 준 가정이어서 사정이 딱하지만 그분들 요구를 다 들어줬다가는 회사가 문을 닫을 지경입니다.”
IMF 이후 실직이나 봉급 삭감 등으로 서민들의 수입이 급감하면서 아파트 입주예정자와 건설업체들의 갈등이 점차 늘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 김우진(金宇鎭)박사는 “분양계약을 했다가 10%의 위약금을 물고 해약하겠다는 사람들이 업체당 평균 계약물량의 30∼40%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금융권의 가계 대출 중단과 할부금융사의 일방적인 중도금 대출금리 인상 및 신규 대출 중단 등도 이러한 해약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약 사태의 해결을 위해 8월부터 가능한 분양권 전매를 앞당겨 허용하고 소비자 주택금융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주택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해 풀기로 한 2조∼4조원 규모의 자금을 건설업체에 직접 지원하기 보다는 중도금및 잔금 지원 자금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황재성기자〉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