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東京)에서 고급술집이 몰려 있는 긴자(銀座)나 아카사카(赤坂)의 밤풍경이 요즘 크게 변했다. 밤이 깊어지면서 빈 택시가 줄지어 서 주당(酒黨)을 기다리지만 한시간 이상 빈 차로 있어도 손님을 구경하기가 힘들다.
‘접대문화’가 뿌리깊은 일본사회에서 요정이나 클럽 등 술집은 그동안 불황과는 담을 쌓았던 곳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주가와 땅값 폭등으로 돈이 넘쳐났던 80년대 후반은 ‘고급술집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이처럼 ‘좋았던 시절’은 이제 옛말이다. 손님이 줄면서 문을 닫는 술집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2차대전 패전후 최대의 불황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고급술집의 몰락을 몰고온 큰 원인은 두 가지. 우선 국내경기가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기업의 수익성이 나빠졌고 회사원의 주머니도 얇아졌다. 특히 접대비 등의 명목으로 회사돈으로 술값을 내기가 어려워졌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일본에서도 자기 봉급으로 고급술집에 드나드는 ‘간 큰 남자’는 별로 없다.
또 관료와 금융기관 및 기업을 둘러싼 과잉접대스캔들이 지난해 이후 언론에 집중 보도된 것을 계기로 일본 재계에서 접대관행 자체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된 것도 술집몰락의 원인이 됐다.
닛산(日産)자동차가 ‘접대금지’를 선언하는 등 대부분의 기업이 접대를 없애거나 줄이는 추세다. 대장성을 비롯한 정부부처도 금융기관 등으로부터 접대받은 직원을 징계하는 등 공직윤리 확립에 나서고 있다.
형식과 예절을 중시하는 일본사회의 특성상 업무에 관련된 접대를 없애는 것이 효율적이냐는 회의론도 나오고 있지만 ‘꿈이여 다시 한 번’을 부르짖고 있는 일본의 고급술집들이 옛 영광을 되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도쿄〓권순활특파원〉kwon88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