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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강주상/기업퇴출기준 「기술」도 포함을

입력 | 1998-06-13 19:40:00


경제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우리 기업의 구조조정을 강요당하는 현실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를 기회로 민주화 시장화된 체제를 구축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눈가림식의 구조조정을 서두르는 것은 더욱 안타깝다. 인위적 퇴출기업 선정이 시장원리에 부합하는지 의문이지만 일단 그것이 정책 방향이라면 선정 기준에 기술개발의 평가를 포함해야 한다.

▼ 기술투자안해 이지경 ▼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노동 자본 기술이 필요한데 우리는 그동안 노동과 자본의 집약적 활용에 힘입어 남다른 발전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관치금융, 재벌의 무리한 사업확장, 생산성을 수반하지 않은 노동계의 지나친 처우 요구, 국제 경쟁력을 유지할 기술혁신의 미흡이 복합적 요인이 되어 오늘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위기해결책의 하나로 노사정(勞使政)협의가 한창인데 기술이 빠진 것이 아쉽다. 필요한 것은 노사기정(勞使技政)의 공동노력이다. 그동안 과학 기술부문 투자를 더욱 체계적으로 해 기술혁신을 이뤘더라면 국제경쟁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고 경제위기의 초래도 지연 또는 방지할 수 있었을 텐데 아직도 그 근본 원인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더구나 현재의 퇴출 기업 선정 기준은 회생 가능성을 보기 위해 오로지 ‘재무구조’에만 의존하는 것 같다. 이것은 중요한 정책 판단 착오다. 당장 재무구조를 좋게 하려다 보니 기업체마다 소리없이 기술 개발 부서를 축소 내지 폐지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기술개발은 단기적 영향이 적고 장기적 혜택이 있을 뿐이므로 축소하더라도 당장은 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연구소의 연구인력은 정부출연 연구소처럼 단합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에 사회의 주의를 끌지도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성장할 때 그동안 쌓아놓은 기술이 없다면 어떻게 경쟁하려는가. 실제 70년대초 중동의 석유파동으로 미국이 불황을 겪었을 때 상당수의 기업들은 연구개발 부서를 폐쇄했는데 몇년후 경기가 좋아지자 이들중 많은 기업이 경쟁력을 잃어 도태되었다. 2차대전후 일본이 빨리 부흥할 수 있었던 것도 과학기술력을 보전하였기 때문이다.

돈이 있으면 기술은 언제든 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낡은 사고방식이다. 기술이 시설장비(하드웨어)나 기술책자에 있다는 생각도 그릇된 것이다. 기술은 과학자의 두뇌와 기술자의 손끝에 있는 것이다. 장비나 시설은 환경이 개선되면 쉽게 구입할 수 있지만 한번 사라진 고급인력은 원점부터 다시 양성해야 한다. 그러므로 과학기술인력은 기업의 사활과 국가의 안보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것이다. 21세기 정보화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일시적으로 기업운영이 어렵다고 이들 고급기술 두뇌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IMF구름이 걷혔을 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기술개발의 장기적 전략을 중시하는 기업은 재무구조가 잠정적으로 더 악화돼 퇴출 기업 선정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재무구조만 따지는 선정기준은 기업들의 연구개발 의욕을 꺾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배고프다고 다음해 농사에 쓸 종자를 먹으면 안되는 것처럼 어렵더라도 기술투자를 소홀히 해선 안된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기업구조조정 과정에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 두뇌 양성업체 지원을 ▼

기술개발의 평가방법도 합리적이어야 한다. 기술개발의 투자금액보다는 연구활동과 개발성과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기술개발을 구실로 토지매입이나 신축건물투자에 집중해온 기업과 우수한 연구인력을 투입해 기술개발을 꾸준히 추진해온 기업을 잘 가려야 한다. 기술개발에 매진하는 기업이야말로 당장은 재무상태가 어렵더라도 회생가능성이 높으며 앞으로 경제위기타개의 선봉이 될 것이다.

강주상